기억을 더듬고 기사도 찾아보니 2005년 11월 초순경이었던 것 같다. 파리 교외 소도시에서 시작된 소요사태가 파리 중심부까지 확산된 시점이었다. 당시 파리특파원으로 일했던 필자는 시위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평소 사람이 많이 모이는 앵발리드 광장을 찾았다.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군사박물관이 바로 옆에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2024년 파리올림픽 때 양궁경기가 열린 바로 그 광장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났다. 올 가을에도 그때와 비슷한 시위 사태가 프랑스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왜 프랑스 국민은 다시 '광장'에 모여든 것일까?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발화점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해 시위는 9월18일 파리 동남쪽 크레테이(Creteil)시의 생텍쥐페리 고교에서 시작됐다. 학생들은 교원 부족과 낡은 학교 시설 개선을 요구하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SNS를 타고 시위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기저기서 "학교에 쥐와 바퀴벌레가 들끓는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첫 시위가 발행한지 10여일 만에 전국 1000여 개 학교로 확산됐고 학부모와 대학생도 가세했다.
왜 '부자 나라' 프랑스에서 고교생들은 쥐와 바퀴벌레가 들끓는 교실에서 공부해야 했을까. 교육 예산이 부족하다지만 이 정도인가. 프랑스 교육예산의 3분의 1이 학생 교육이 아닌, 퇴직 교직원 연금 지급에 쓰이기 때문이다. 최근 공개된 내년도 예산안 기준으로 교육부 예산의 약 32%, 약 285억 유로가 연금 재정 관련 부담금이다. 사정이 이런 데도 프랑스 정부는 재정적자가 심하다 보니 비교적 저항이 덜한 교육 예산을 줄여왔다. 2000년부터 2023년까지 프랑스 전체 연금 지출이 GDP 대비 2.5%포인트 증가한 반면, 교육 지출은 0.5%포인트 감소했다. 열악한 교육 현장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사태의 불씨가 된 연금제도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프랑스 연금제도를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기금 없이 보험료를 많이 내고 연금도 많이 받는 구조다. 우선 기금이 없기 때문에, 현재 근로 세대가 낸 보험료로 은퇴 세대의 연금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민간 근로자는 급여의 11.3%(회사 부담 별도)를, 공무원은 11.1%를 보험료로 낸다. 그런데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보험료 납부자보다 연금 수령자가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프랑스 연금정책자문위원회에 따르면, 연금 수령자 1명당 보험료 납부자는 2002년 2.14명에서 2024년 1.78명으로 줄었다. 보험료 납부자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국가는 국가대로 공적연금을 유지하는데 힘이 든다. 근로자의 보험료를 마냥 올릴 수 없으니,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는 정부 지출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해 민간과 공공 부문을 합쳐 프랑스 정부가 연금 지급을 위해 부담한 돈이 대략 1453억 유로(약 215조원)에 달했다. (연금정책자문위원회 2026년 6월 보고서) 지난 해 프랑스 정부는 1525억 유로 적자를 냈다. GDP의 5.1%에 달하는 수치다. 숫자만 본다면 프랑스 정부가 공적연금에 지출한 액수와 큰 차이가 없다.
힘들게 보험료를 내고 국가는 빚에 허덕이는데, 은퇴자들이 받는 연금은 퇴직 전 소득의 70%나 된다. (OECD, 세후 실질 기준) 노후 삶의 질을 보장해준다는 좋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문제는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지게 되는 부담이다.
프랑스 헌법 제 2조는 공화국의 표어가 '자유·평등·박애'임을 명시해 놓았다. 이번 시위는 크게 보면 '젊은 층에 불리하고 노인에게 유리한 불평등한 복지 시스템'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모든 시민이 법 앞에서 평등(Egalité)하다는 원칙'을 바로 세워달라는 요구다. 당연한 주장이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돕는 연대와 형제애'의 상징인 박애(Fraternité)가 도전 받고 있다. 프랑스가 딜레마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