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정기국회가 시작됐지만 국회에는 34년째 풀지 못한 '위헌법률 숙제'가 남아 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에도 정비되지 않은 법률이 26건에 달하는 만큼 이번 정기국회에서 해묵은 입법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3일 국회사무처와 헌재 등에 따르면 현재 정비가 필요한 위헌·헌법불합치 법률은 모두 26건으로 파악된다. 위헌 결정 법률이 15건, 헌법불합치 결정 법률이 11건이다.
조정식 국회의장이 지난달 '위헌법률 정비 활성화 TF(태스크포스)'를 출범시킬 당시에는 위헌 15건, 헌법불합치 12건 등 모두 27건이었다. 이후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개정된 반면 헌재가 지난달 27일 병역법에 대해 새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정비 대상이 다시 추가됐다.
정비 속도가 헌재의 새 위헌 결정과 후속 입법 지연을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다. 헌재가 입법시한을 정하더라도 국회가 이를 지키도록 강제할 장치가 사실상 없어 위헌성이 확인된 법률조차 수년간 방치되는 일이 반복돼 왔다.
대표적 사례가 국가보안법이다. 헌재는 1992년 4월 찬양·고무죄 등 피의자에 대한 구속기간을 최대 50일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한 국가보안법 19조에 대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34년이 지난 현재까지 관련 법률 정비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일부 국가보안법 위반죄의 재범에 대해 법정 최고형을 사형으로 규정한 13조 역시 2002년 위헌 결정 이후 24년 가까이 미정비 상태다.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수십년간 방치된 사례도 있다. 약사 또는 한약사가 아니면 약국을 개설할 수 없도록 한 약사법 조항은 약사들로 구성된 법인의 약국 개설까지 막는다는 이유로 2002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지만 24년째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가 헌재가 제시한 입법시한까지 넘긴 사례도 적지 않다. 야간 옥외집회를 포괄적으로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은 2009년 헌법불합치 결정 당시 2010년 6월 말까지 개정하도록 했지만 16년이 지나도록 미정비 상태다.
형법상 낙태죄도 대표적인 입법 공백 사례다. 헌재는 2019년 자기낙태죄와 의사의 낙태를 처벌하는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말까지 개선입법을 주문했다.
국회가 시한을 넘기면서 해당 조항은 효력을 잃었지만 후속 제도 정비는 5년 넘게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보안관찰법과 8촌 이내 혈족 간 혼인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규정한 민법 조항, 혼외자 출생신고와 관련한 가족관계등록법 등도 개정 시한을 넘긴 채 남아 있다.
국회가 기존 법률을 고치는 동안 새로운 정비 대상도 계속 생겨난다. 헌재는 지난달 27일 정당한 사유가 있는 병역거부자까지 고용주가 일률적으로 해직하도록 한 병역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2028년 2월 말까지 개선입법을 요구했다.
정기국회에서는 쟁점 법안과 국정감사,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의 격돌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이미 결론 난 법률을 바로잡는 일은 여야의 정치적 이해와 별개로 국회가 해야 할 기본 책무라는 지적이다.
조 의장이 신설한 TF는 정명호 입법차장을 단장으로 미정비 법률을 순차적으로 정비하고 국회법 개정 등 제도 개선 방안도 마련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관련 제도 정비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조 의장은 "위헌·헌법불합치 법률 개정은 국민 기본권 보호와 헌법 가치 실현을 위해 국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