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비밀 누설' 해고했는데..."무효" 법원 판단 나왔다, 왜

이혜수 기자
2026.08.23 09:00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가정법원·서울행정법원 /사진=이혜수 기자

직원에게 징계사유가 인정되더라도 회사가 취업규칙에서 정한 징계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면 해고는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3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강재원)는 A사가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지난 6월18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소송에는 A사 연구개발팀에서 근무했던 B·C·D씨가 피고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했다. 엔지니어링 서비스업과 농업 컨설팅업 등을 하는 A사는 이들이 취업규칙을 위반했다며 징계해고했다. 회사 기술과 자산을 이용해 동종업계 사업을 추진하고 영업비밀을 누설했으며, 근무시간 중 동종업계 사업을 기획·진행했다는 등의 이유였다.

B·C·D씨는 2024년 8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지만 같은 해 11월 기각됐다. 이후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고 결과는 뒤집혔다. 중앙노동위는 징계사유와 징계 수위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징계 절차에 하자가 있다며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문제가 된 것은 징계위원회 운영 방식이었다. 징계 절차상 징계위원 4명이 참석한 것으로 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3명만 참석해 직원들의 진술을 녹음했다. 이후 별도로 징계위원 4명이 녹음파일을 청취한 뒤 징계 여부와 수위를 결정했다. 회사 규정에서 정한 무기명 비밀투표도 실시하지 않았다.

A사는 중앙노동위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당시 불참한 징계위원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변호사가 대신 참석했고, B·C·D씨의 동의를 받아 녹음한 내용을 다음 날 징계위원 4명이 청취한 뒤 해고를 최종 의결했기 때문에 정족수 관련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직원들의 비위 정도를 고려하면 무기명 비밀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를 무효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은 중앙노동위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B·C·D씨에 대한 징계사유의 존재 여부나 징계 수위와 관계없이 취업규칙에서 정한 절차를 위반한 이상 해고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A사의 징계관리규정은 징계위원회 회의정족수를 4명 이상으로 정하고 의결은 무기명 비밀투표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A사는 해당 규정이 정식 사내 규정으로 공지·등록되지 않아 취업규칙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전 직원이 열람할 수 있는 폴더에 규정이 게시돼 있었던 점 등을 근거로 취업규칙에 해당한다고 봤다.

불참한 징계위원을 대신해 변호사가 참석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규정상 회의정족수를 충족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이 같은 방식으로 절차상 하자를 치유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징계위원의 권한을 변호사에게 위임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는 데다 이를 허용할 경우 징계위원의 자격을 제한한 규정의 취지가 훼손된다고 지적했다.

A사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항소장을 제출했다.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이어질 예정이며 아직 첫 기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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