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디지털 성폭력의 양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대응체계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왔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7일 오후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디지털 성폭력 대응의 다음 단계를 묻다'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폭력을 불법 촬영이나 유포 등 개별 행위에만 한정하지 않고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여성혐오와 성적 대상화 등 구조적 젠더기반폭력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 예방부터 지원·수사·삭제·차단·처벌까지 대응체계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여진 한국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고통의 근본에는 '문란한 여성', '부도덕한 여성' 등 여성이 '정상적인 자리'에 있지 않게 됐다는 낙인을 통해 스스로의 사회적 평판이 훼손됐다는 인식이 자리한다"며 "이를 여성혐오와 젠더기반폭력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디지털 기술은 여성의 사회적 평판을 훼손하는 방식을 다양하게 만든다"며 "현재 법은 이미지 생성과 유포, 소지 행위 등을 중심으로 디지털 성폭력을 규율하지만 피해자의 삶과 폭력의 구조까지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현행 디지털 성폭력 대응 제도의 근본적 한계로 △초국경 플랫폼 대응 부재 △AI 규율의 한계 △청소년 가해자 문제 △법체계의 분절성 △처벌과 회복의 불일치 △민주주의 위협 등 6가지를 제시했다.
허 조사관은 "특히 처벌 지표의 함정에 주목해야 한다"며 "여성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를 단순 명예훼손으로 축소하거나, 사건 이후에도 피해가 지속되는데 단순 검거를 성공의 절대 지표로 판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피해 영상 등의 삭제·차단 단계에서는 해외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조순애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역량강화팀장은 "센터 전체 업무의 90%를 삭제 지원이 차지한다"며 "2만6658개 사이트 가운데 95.5%가 국외 서버를 운영하는 사이트여서 국제협력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김병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확산방지팀장도 "해외 사이트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이어서 피해자 보호보다 비즈니스 모델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도화된 통신 기술이 필요한 상황이고 국가마다 제도와 법률이 다른 만큼 국제협력 구조 전반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디지털 성폭력 피의자의 연령대가 낮아지는 데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순노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팀장은 "지난해 디지털 성폭력 피의자의 연령대를 분석했을 때 10·20대가 80%를 차지했고, 10대 중에서도 후반에서 초반으로 점점 어려지는 경향을 보였다"고 밝혔다.
또한 "수사를 해보면 청소년들이 딥페이크를 하나의 놀이문화처럼 여기고 죄의식이 없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며 "법 조항 개선과 함께 디지털 성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인식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