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영화관서 시각·청각장애인용 자막·화면해설 미제공은 차별"

양윤우 기자
2026.09.03 10:52
12일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내 국기게양대에 태극기와 법원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영화관이 시각·청각장애인에게 자막·화면해설과 이를 수신할 기기 등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법이 금지한 차별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이 사건 판결문을 일반 판결문과 내용을 쉬운 문장과 시각자료로 설명한 '이지리드(Easy-Read) 판결서'로 각각 제공했다. 대법원이 이지리드 판결서를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천대엽)는 3일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언어장애인들이 영화관 운영사들을 상대로 낸 차별구제 청구 소송에서 원심 중 원고 패소 부분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영화관 운영사들의 상고는 기각했다.

원고들은 영화관이 화면해설과 자막,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수신기기 등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에 차별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로 화면해설·자막과 수신기기·서버 등을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다만 원고들이 영화관에 자막과 화면해설을 직접 제작하라고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제작·배급사나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자막·화면해설 파일을 제공받은 영화에 이를 재생할 장비와 관련 정보를 제공하라는 취지였다.

1심은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이고 영화관들에 자막·화면해설과 FM 보청기기, 웹사이트 정보, 점자·큰글자 문서와 수어·문자 안내를 모두 제공하라고 명령했다.

2심도 영화관이 화면해설과 자막 등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고 봤지만 제공 범위는 줄였다. 화면해설과 자막을 모두 제공하는 영화를 '배리어프리 영화'라고 한다. 모든 관객에게 자막·해설을 함께 제공하는 '개방형'과 필요한 관객이 별도 기기로 받는 '폐쇄형' 방식으로도 구분된다.

2심은 개방형 방식의 경우 300석 이상 상영관이나 전체 좌석이 300석을 넘는 복합상영관의 상영관 1곳 이상에서 각 업체 전체 상영 횟수의 3%만큼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하도록 했다. 폐쇄형 방식은 같은 범위의 상영관에 화면해설 수신기기와 자막 수신기기를 각각 2개 이상 두고 서버를 제공하도록 했다. 이를 넘어 의무를 확대하면 업체에 과도한 부담이 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영화관이 화면해설·자막과 수신기기 등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이라는 2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영화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규정한 정보에 해당하고 장애인이 영화에 접근하고 이를 즐길 권리는 개인의 자아 발전과 사회 참여뿐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2심이 상영관의 규모와 상영 횟수라는 두 기준을 겹쳐 적용해 구제 범위를 지나치게 좁힌 것은 잘못이라고 봤다. 장애인의 영화 접근권보다 업체의 재정 부담을 과도하게 고려해 법원이 구제 조치의 범위를 정할 때 갖는 재량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2심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으면서도 영화관의 비용을 줄일 방법이 있는지, 비장애인의 관람 방식에 과도한 혼란을 주지 않으면서 장애인에 대한 문화적 차별을 실질적으로 해소할 기준은 무엇인지 등을 충분히 살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원이 차별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의 내용과 범위를 정할 때는 장애인의 권리와 영화관 운영사의 재산권·경영의 자유를 모두 따져야 한다"고도 밝혔다. 어느 한쪽의 이익을 지나치게 크게 또는 작게 반영하면 위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법원은 어느 상영관에서 얼마나 자주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공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의무 범위는 서울고법이 다시 심리해 정하라며 파기환송했다.

이날 선고에는 청각장애인과 청각·언어장애인인 원고들을 위한 수어통역도 지원됐다. 대법원은 이들 가운데 2명의 신청을 받아 일반 판결문과 별도로 3쪽 분량의 이지리드 판결서를 제공했다. 이지리드 판결서는 판결의 핵심을 간명한 글과 시각자료로 설명해 장애인 등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자료다.

대법원에서 이지리드 판결서가 제공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은 최종심에서 단순한 판결 요지나 안내를 넘어 판결서 자체의 내용을 이지리드 방식으로 작성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