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보고 뒷걸음질, 그 남자 차엔...여성 속옷과 성기구, 끔찍한 정체[뉴스속오늘]

박다영 기자
2026.09.04 06:03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01년 9월 4일 오전 3시쯤 서울 광진구 화양동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30대 회사원 여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사진=KBS 2TV '스모킹건'

2001년 9월 4일 오전 3시쯤. 서울 광진구 화양동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30대 회사원 여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옷가지와 이불에 불을 붙인 후 속옷과 핸드백,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달아났다.

경찰은 피해자 하의가 벗겨져 있는 점 등을 고려해 강도강간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용의자를 찾지 못해 미제 사건으로 분류했다.

8년 후인 2009년 9월 경찰의 불심검문에서 우연히 단서가 포착됐다. 좀도둑으로 의심된 이대영(1973년 9월 29일생)이 등장하면서다. 경찰은 수사 강도를 높이고 속도를 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대영은 범행을 자백했다. 이대영은 뒤이어 미제사건이었던 1995년 아차산 약수터 살인 사건도 본인이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성추행·살해 후 이불에 불 질러 '강도강간'으로 위장…8년 뒤 불시 검문으로 만난 범인

2001년 9월 4일 새벽 3시 이대영은 평소 스토킹하던 A씨 집에 몰래 들어가 속옷을 훔치고 성추행했다. A씨가 잠에서 깨 소리를 지르자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후 강도강간으로 위장하기 위해 A씨의 음부에 화장품 등 이물질을 넣고 라이터로 이불과 옷가지에 불을 붙인 후 속옷과 핸드백, 주민등록증, 그리고 현금 2만원을 챙겨 달아났다.

물증을 찾지 못한 경찰은 사건을 미제 사건으로 분류했다.

8년 후인 2009년 9월 26일 새벽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광진경찰서 화양지구대가 특별 방범 순찰을 돌던 때 이대영을 검문하면서 새 국면에 들어섰다.

당시 이대영은 점퍼 차림으로 마당에 속옷을 걸어둔 집을 찾아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때 경찰 순찰차를 본 이대영은 "하필 이때"라고 말하고 뒷걸음질 쳤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순경이 불심검문을 했는데 이대영은 본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순경은 지구대로 연행했다.

2001년 9월 4일 오전 3시쯤 서울 광진구 화양동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30대 회사원 여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사진=KBS 2TV '스모킹건'

순경이 그의 휴대전화에서 나온 자동차 열쇠를 보고 "차를 어디에 세워뒀냐"고 추궁해 이대영을 앞세워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의 차에는 여성 속옷 20점과 직접 만든 흉기구, 흉기 3점,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있었다.

지구대는 이대영을 성도착증에 걸린 여성 속옷 절도범 정도로 판단해 '절도 혐의'로 광진경찰서로 넘겼다. 광진경찰서에서도 이대영을 여성 속옷 절도범으로 봤다.

그의 범죄 이력을 조회하자 사람들 앞에서 성기를 노출한 전력(2006년), 여성 속옷 절도(2002년), 강도(1998년) 등 전과 3범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2001년 9월 4일 오전 3시쯤 서울 광진구 화양동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30대 회사원 여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사진=KBS 2TV '스모킹건'

대수롭지 않은 절도범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는 차에서 나온 하드디스크를 열어본 후 달라졌다. 하드디스크에는 포르노와 남녀 23명의 신분증을 촬영한 사진 파일이 저장돼 있었고 그중에는 A씨의 신분증이 포함돼 있었다. 다음날 이대영은 광진경찰서 강력팀으로 넘겨졌다.

초등학생 때 성폭행당한 후 성도착증…'아차산 약수터 살인사건'까지 자백

담당 경찰은 이대영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12시간 동안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줬다.

이대영은 재혼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5명의 이복형제를 뒀다. 단칸방에서 가난하게 자라 늘 주눅 들어 있었다.

2001년 9월 4일 오전 3시쯤 서울 광진구 화양동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30대 회사원 여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사진=KBS 2TV '스모킹건'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동네 남성에게 아차산길을 알려주다가 인적이 드문 곳에서 성폭행을 당해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사춘기 때 포르노에 빠져 소아성애 등 성도착적인 포르노 CD를 모았다.

결혼 직후 중풍으로 쓰러져 내내 누워있었던 아버지는 이대영이 중학교 3학년 때 세상을 떠났다. 이대영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용직을 전전했다. 1995년 2월 군대를 제대한 후 평일에는 인쇄소를 다니는 직장인 행세를 하고 쉬는 날에는 여성 속옷을 훔치고 바바리맨 행각을 벌였다.

2004년부터는 한 여성과 사실혼 관계에 있었다. 이 여성은 "평소 그런 성향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오히려 성적인 부분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고 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심리조사한 결과 '사이코패스'라고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라포 형성'을 위해 이대영의 생일까지 챙겼다. 딸기 케이크에 초를 꽂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후 이대영은 "형님으로 부르고 싶다"며 범행을 자백하기 시작했다.

이대영은 "평소 A씨를 좋아해 눈여겨보고 있었다"며 "혼자 자는 집에 들어가서 때렸다"고 범행 동기와 정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이어 모두를 놀라게 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1995년 아차산 약수터 살인사건을 본인이 저질렀다고 털어놓은 것.

이대영은 사건 당일 새벽 운동 삼아 아차산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약수터에서 세수를 했다. 물을 뜨던 58세 여성 B씨가 "많은 사람이 먹는 물인데 세수를 하면 어떡하냐"고 나무라자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해 욱한 이대영은 옆에 있던 돌을 집어 들었다.

이대영은 돌을 내리쳐 B씨를 살해했고 시신을 산책로 주변 숲으로 옮겨 옷을 벗기고 소지품을 모두 빼낸 후 음부에 나뭇가지를 꽂아둔 채 유기했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렸지만, 당시에는 약수터 주변에 CC(폐쇄회로)TV 등 방범 시설이 없어 용의자를 찾지 못했고 사건을 미제 사건으로 분류하고 수사팀을 해체했다.

법원 징역 22년 6개월 선고…혈액암으로 사망

1심 재판부는 이대영에게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하며 "강도와 절도 등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데도 다시 범행을 저질렀고 범행 동기와 수법, 죄질이 극히 나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범행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점,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초등학교 때 성추행당한 경험 등이 범행에 미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양형이 가볍다고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도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이대영은 실형을 살던 중 혈액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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