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 강국' 한국 어쩌다..."저 사람 무슨 짓 하면 어쩌지" 불안한 사람들

오문영 기자, 최문혁 기자, 민수정 기자, 김서현 기자, 김유빈 기자
2026.10.26 05:00

[MT리포트]정치의 과잉, 구멍난 안전 (上)

[편집자주] 정치권이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형사사법체계 개편을 둘러싼 논쟁에 집중하는 사이 정작 국민 일상은 위험에 노출됐다. 인천 흉기난동과 서울 송파 장모 살해 사건, 강남 방화 사건 등 최근 이어진 강력범죄는 막을 수 있었던 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전자감독과 접근금지 등 각종 제도를 뒷받침할 인력과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 고위험군도 대책 없이 사회에 복귀하고 있다. 국민 안전망의 빈틈을 살펴보고 개선 과제를 짚어본다.

'누가 수사하나'에 쏠린 정치권…구멍 난 국민 안전망

13일 인천 남동구 홈플러스 푸드코트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A씨가 휘두른 흉기에 1명이 심정지 상태에 빠지는 등 마트 및 영화관 이용객 8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뉴스1

집권여당이 검찰개혁과 형사사법체계 재편에 몰두해온 사이 국민들은 일상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최근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범죄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입법·제도 개선에도 보다 일찍 관심을 기울였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최근 잇따른 강력범죄에서는 범행 이전에 위험 징후가 드러났음에도 피해를 막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확인된다. 인천 흉기난동범은 전자발찌를 착용한 살인미수 전과자였고, 송파구에서는 접근금지 조치가 종료된 틈에 장모를 살해하고 아내를 납치하는 범행이 발생했다. 강남구 방화범은 과거 같은 건물에 불을 지르려다 구속된 전력이 있었다. 지난 12일 제주에서도 스토킹·교제폭력 등으로 네 차례 신고당한 60대 남성이 끝내 전 연인을 살해했다.

일상을 위협하는 범죄의 위험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3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관계성 범죄로 입건된 피의자가 이후 동일한 피해자를 상대로 살인이나 살인미수를 저지른 사례는 501건에 달한다. 같은 기간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이상동기 범죄도 146건 발생했다. 연간 발생 건수는 감소하는 추세지만 매년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인명피해가 이어졌다.

문제는 이 같은 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 정비가 정치권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1년 4개월간 형사사법 분야의 화두는 사실상 검찰 개혁뿐이었다. 지난해 6월 검찰청 폐지 논의가 본격화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개정 형사소송법이 국회를 거쳐 국무회의를 통과하기까지 검사의 보완수사권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반면 범죄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안 상당수는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전자감독을 강화하는 법안은 송파구 사건 이전부터 여야에서 4건 발의됐지만 처리되지 않았다. 22대 국회에 발의된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 32건도 모두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새 형사사법체계 시행으로 일선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의 업무 부담이 커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평균 사건처리 기간은 2020년 55.6일에서 2022년 67.7일로 늘었다가 점차 감소해 지난해 54.5일로 단축됐다. 한 경찰관은 "수년에 걸쳐 기간을 줄여놨는데 다시 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범죄 예방 예산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경찰청 범죄예방·생활질서유지 예산은 올해보다 157% 늘었지만 증가분 대부분은 첨단 순찰장비 도입에 투입된다. 반면 법무부의 재범 징후 감지·대응 사업 예산은 4억원 줄었다. 고위험자 관리와 재범 방지 등 핵심 과제에 필요한 예산이 충분히 반영됐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딸, 언제 들어와?" 8시만 돼도 불안...밤길 안전했던 한국, 어쩌다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역사 내부에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사진=김유빈 기자.

요즘은 어딜 가도 '누가 무슨 짓 하면 어떡하지' 싶은 불안한 마음이예요.

지난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직장 동료와 출장을 가기 위해 열차를 기다리던 50대 여성 김모씨는 최근 잇단 강력범죄 소식에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이 커졌다고 했다. 김씨는 "우리나라 치안이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며 "순찰 강화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치안 강국' 인식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인천 도심의 쇼핑센터에서 흉기난동이 벌어진 데 이어 서울 강남에서는 점심시간대 연쇄 방화사건이 발생했다. 일상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가 피해를 입은 사건이라는 점에서 '안전한 일상'에 대한 시민들의 경계심도 높아지고 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한국의 치안 환경은 해외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2년 삼성전자가 영국에서 새벽 거리를 홀로 달리는 여성이 등장하는 광고를 선보였다가 현지에서 뭇매를 맞았을 당시 한국에서는 심야 조깅이 가능한 치안 환경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달라진 목소리가 나온다. 시민들은 잇따른 강력범죄 소식에 일상 속 경계심이 높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낯선 사람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늦은 시간 귀가하는 가족을 걱정하는 일도 잦아졌다고 했다. 60대 여성 김모씨는 "언제 갑자기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무섭다"며 "요즘은 딸이 저녁 8시만 넘어도 귀가하지 않으면 걱정돼 전화부터 한다"고 했다.

특히 지하철과 쇼핑몰 등 사람이 밀집한 공간에 대한 불안이 컸다. 인천에서 서울을 찾은 김민주씨(32)는 "지하철처럼 폐쇄된 공간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보이면 혹시 피해를 볼까 봐 일부러 피한다"고 말했다.

국민 체감 안전도와 범죄율 양상 비교/그래픽=김현정

범죄 발생 추이와 국민의 안전 인식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공소청에 따르면 2024년 주요 형법범죄(살인·강도·성폭력·폭행·절도) 발생 건수는 2118건으로 2년 전(1943건)보다 약 9% 늘었다. 같은 기간 우리 사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국민의 비율은 낮아졌다. 국가데이터처가 전국 13세 이상 인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안전에 대한 전반적 인식' 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를 안전하다고 인식하는 답변 비율은 2024년 28.9%를 기록했다. 2022년(33.3%) 대비 약 4.4%포인트(p) 하락했다.

범죄 피해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이 지난 3~4월 전국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9%가 '과거보다 범죄 발생 위험이 커졌다'라고 응답했다.

치안은 전적으로 정부의 역할이나 정치권이 정쟁에 빠져있다보니 시민들 스스로 안전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인천 흉기난동 사건 이후인 지난 13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호신용품' 검색량 지수는 전날의 5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저가 호신용품도 한때 품절됐다.

고려대는 외부인이 교내 건물에 반복적으로 출입을 시도한다는 민원이 접수되자 지난달 29일부터 야간 경계근무를 강화했다. 그런데도 지난 19일에는 교내에서 50대 여성이 긴 알루미늄 밀대 자루로 학생 여러 명을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여성은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사적 영역에서의 치안 강화에는 한계가 있어서다. 이에 정부는 커지는 국민 불안에 대응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1일 경찰의 날을 맞아 "국민의 불안이 커진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범죄의 위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하고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MT리포트]정치의 과잉, 구멍난 안전

"더 이상 가둘 곳 없다" 가석방 확대 추진되는데...안전망 '빈틈' 메우려면 (中)

'장모 살해' 그 끔찍한 범행 막을 수 있었을 텐데...국회서 잠든 안전 법안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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