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 살해' 그 끔찍한 범행 막을 수 있었을 텐데...국회서 잠든 안전 법안

'장모 살해' 그 끔찍한 범행 막을 수 있었을 텐데...국회서 잠든 안전 법안

우경희 기자, 세종=정현수 기자, 박상혁 기자, 박진호 기자, 이현수 기자, 고지운 기자
2026.10.26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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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정치의 과잉, 구멍난 안전 (下)

[편집자주]  정치권이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형사사법체계 개편을 둘러싼 논쟁에 집중하는 사이 정작 국민 일상은 위험에 노출됐다. 인천 흉기난동과 서울 송파 장모 살해 사건, 강남 방화 사건 등 최근 이어진 강력범죄는 막을 수 있었던 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전자감독과 접근금지 등 각종 제도를 뒷받침할 인력과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 고위험군도 대책 없이 사회에 복귀하고 있다. 국민 안전망의 빈틈을 살펴보고 개선 과제를 짚어본다.

참사땐 대책약속, 국회선 낮잠?...20년 안전입법 성적표 보니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9회국회(정기회) 제10차 본회의에서 산업재해 예방을 골자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산안법)이 통과되고 있다. 2026.10.01. jhope@newsis.com /사진=정병혁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9회국회(정기회) 제10차 본회의에서 산업재해 예방을 골자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산안법)이 통과되고 있다. 2026.10.01. [email protected] /사진=정병혁

서울 송파구 장모 살해 및 아내 납치 사건 이후 가정폭력 가해자 전자감독 강화 요구가 거세다. 경찰 조사에서 피의자가 범행 전 법원 접근금지 조치를 9차례나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 가정폭력 가해자들에게 미리 전자발찌를 부착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거란 주장이다. 해당 법안은 이미 여야에서 발의된 상태다. 그런데 아직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 관련 법안은 양부남-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안, 이만희-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안 등 총 4건이 발의돼 소관 상임위 절차 등을 거치고 있다. 국민 안전 대책 법안 통과와 시행 지연으로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관련 입법 전반으로 시선을 넓혀 보면 이런 상황이 더 뚜렷하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기준 22대 국회 발의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은 총 33건이다. 기존 접근 금지 조치를 강화하거나 고위험 가해자 격리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모두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16건은 심사단계, 17건은 접수단계다.

대형 참사나 강력범죄 이후 정치권이 재발방지 대책을 만드는 건 익숙한 패턴이다. 최근 20여년 간 적잖은 사건사고와 함께 입법이 추진됐다. 실제 법률로 만들어진 사례도 적잖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권이 재난 대응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한 게 가장 대표적 사례다. 세월호특별법 등 이른바 '세월호 3법'은 참사 200여일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재난안전 업무를 총괄하는 국민안전처가 신설된 것도 이 때였다.

2022년 이태원 참사 당시에도 정치권은 재발방지 입법에 나섰다. 주최자가 불분명한 지역축제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재난안전법 개정안이 2023년 12월 통과됐다.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특별법도 여야 갈등 속에 2024년 5월 최종 국회 문턱을 넘었다.

2022년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은 범죄 대응 매뉴얼을 바꾼 계기가 됐다. 이듬해 국회는 스토킹처벌법을 개정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더라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반의사불벌 조항을 폐지했다. 가해자 위치추적장치 부착 근거도 마련했다.

실질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법안이 처리되지 못한 사례들은 불안감을 키운다.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 이후 발의된 수해예방과 재난대응 법안 10건 중 4건은 통과됐지만 6건은 폐기됐다. 관련 국정조사는 2025년에야 실시됐다. 2024년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후속조치도 아쉽다. 화재예방법과 재난안전법 등 개정안이 여전히 상임위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대형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늦은 입법에 대한 지적이 되풀이된다. 그만큼 범죄 예방을 위한 위치추적이나 격리 등의 강제조치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모든 법안이 통과됐다고 해서 사고가 모두 예방됐을거라 단정할 수는 없으며, 처벌 강화에 따른 다른 부작용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다만 이런 우려들까지도 제도 도입과 현장 작동 점검,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예방대책 마련 등 보다 적극적인 행정과 정책으로 불식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더 힘이 실린다. 참사 이후 발표하는 대책 뿐 아니라 이미 국회에 올라온 법안을 처리하는 게 정치의 책임을 다하는 첫걸음이 될 거라는 지적이다.

내년에 순찰로봇 도입된다지만…전자발찌 예산은 줄었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이재명 대통령이 강력범죄와 관련해 사후 대응을 넘어 예방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력 범죄에 대해선 "전쟁을 선포한다는 각오로 임해야겠다"고 했다. 정부 예산안이 제출된 상황이지만, 국회에서 범죄예방 예산의 증액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25일 기획예산처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본예산 기준 재난안전 예산은 25조6000억원으로 전년대비 2조8000억원 늘었다. 총지출 대비 재난안전 예산 비중은 2020년부터 2026년까지 3.4~3.8%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비율은 3.5%다.

재난안전 예산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행정안전부 장관과 기획처 장관이 정하는 재난안전사업 예산을 기준으로 한다. 재난안전 예산 중에 범죄와 관련된 예산은 2025년 3421억원, 2026년 3535억원이다.

이 대통령이 거론한 범죄예방 예산은 다양한 사업으로 분산돼 있다. 우선, 경찰청 소관의 '범죄예방 및 생활질서유지' 예산은 올해 본예산을 기준으로 249억4100만원 규모로 편성됐다. 내년에는 정부안을 기준으로 641억100만원으로 올해보다 391억6000만원(157%) 늘었다.

늘어난 예산의 대부분은 첨단기술 범죄예방 순찰장비 운영비(450억원)다. AI(인공지능), 자율주행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순찰장비 도입을 위한 것으로 신설 항목이다. 국회 심의 과정을 통과하면 내년에 AI 기반의 자율주행 4륜형 순찰로봇이 도입된다.

112는 고도화에 나선다. 정부는 '112 시스템 운영' 명목으로 내년 예산에 318억6900만원을 편성했다. 올해 예산인 213억7200만원보다 104억9700만원(49%) 증액된 예산이다. 차세대112 시스템 구축 예산을 131억2900만원 증액한 게 대표적이다.

최근 강력범죄 사건과 연관됐던 전자발찌와 관련해선 내년 법무부의 '전자감독' 예산이 333억800만원으로 올해보다 39억5800만원(10.6%) 감액됐다. 다만, 감액된 금액 수준으로 '전자감독시스템운영' 예산이 38억8700만원 순증됐다.

전자감독 예산은 △2023년 306억7700만원 △2024년 324억2700만원 △2025년 368억4700만원 △2026년 372억2600만원 등으로 매년 늘었지만, 내년에는 전자감독시스템운영 예산을 포함하더라도 소폭 감액됐다.

법무부 소관의 '재범징후의 선제적 감지 및 대응력 강화' 예산은 올해 30억원에서 내년 26억원으로 줄었다. 이 예산은 전자감독 대상자의 재범위험으로부터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AI를 활용해 재범 예측 시스템을 개발하는 사업에 투입된다.

박홍근 기획처 장관은 지난 23일 국정감사에서 "범죄 대응과 관련된 예산이 추가적으로 더 필요한지 면밀히 살피겠다"고 말했다.

처벌 중심서 사전 예방으로…구멍 난 안전망 메우려면

인천 대형 상업시설에서 흉기난동을 벌여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된 최충락이 23일 오전 인천 남동경찰서에서 인천지방공소청으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사진=뉴스1.
인천 대형 상업시설에서 흉기난동을 벌여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된 최충락이 23일 오전 인천 남동경찰서에서 인천지방공소청으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사진=뉴스1.

국민 일상을 지키는 안전망에 허점이 드러나자 전문가들은 범죄 발생 이후 검거와 처벌에 집중하는 사후 대응 방식에서 벗어나 예방과 피해자 보호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미 마련된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관계기관의 공조를 강화하고 부족한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우선 범죄 예방 활동에 대한 경찰의 역할과 평가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검거 실적 등 사후 수사 성과를 중심으로 경찰의 업무를 평가하면서 상대적으로 성과를 측정하기 어려운 예방 활동은 미흡했다는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은 검거 건수처럼 성과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수사에 집중해 온 반면 범죄를 사전에 막는 예방 활동은 소홀히 해온 측면이 있다"며 "시민 만족도와 불안감 등을 수치화된 평가 지표에 반영해 경찰이 범죄 예방 전문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관계부처가 역할을 나눠 위험 요인에 대응하는 협력체계도 필요하다. 범죄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더라도 경찰의 권한과 인력만으로는 필요한 조치를 모두 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웅혁 교수는 "경찰 혼자 힘으로는 범죄 예방에 한계가 있다"며 "장기적으로 관계기관과 협력하는 '네트워크 치안'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 주민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함께 살피고 경찰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은 지자체와 관계부처가 역할을 나눠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자감독 경보 증가 추이, 전자감독 지도·감독 전담인력 및 대상자 1인당 관리 인원/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전자감독 경보 증가 추이, 전자감독 지도·감독 전담인력 및 대상자 1인당 관리 인원/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현장 인력 부족과 예산 확충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전자감독과 보호관찰, 정신응급 의료체계 등 고위험 대상자를 관리하는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이를 운영할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실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1~8월) 전자감독 경보 발생 건수는 506만3479건으로 집계됐다. 8개월 만에 2022년(253만602건) 연간 건수의 두 배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전자감독 대상자를 직접 지도·감독하는 전담 인력은 2022년 255명에서 올해 8월 기준 234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직원 1인당 관리 대상자는 17.1명에서 20.3명으로 늘었다. 전자감독 업무 부담은 커지고 있지만 현장 인력은 오히려 감소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고위험군에 대한 감독과 함께 치료 지원을 위한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범죄 위험을 경찰의 순찰이나 형사처벌만으로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상 동기 범죄가 반복되는 원인을 경찰의 대응이나 형사처벌 부족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며 "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도 범행이 발생하는 만큼 경찰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치료와 복지·정신건강 차원에서도 접근해야 한다"며 "경찰과 관련기관의 공조를 강화하고 고위험도 정신질환자가 제때 응급입원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부족한 인력과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계성 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 강화 필요성도 언급된다. 접근금지 등 가해자에 대한 제재뿐 아니라 피해자가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보호시설과 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윤호 교수는 "해외에서는 피해자의 이름과 주거지를 바꾸고 보복 범죄 우려가 크면 성형수술까지 지원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며 "우리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MT리포트]정치의 과잉, 구멍난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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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희 기자

머니투데이 정치부 the300 국회팀장 우경희 기자입니다.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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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기자

사회부 사건팀 이현수 기자입니다.

고지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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