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분쟁까지 형사사건으로"…무분별한 고소·고발에 수사력 분산 우려

민수정 기자
입력 2026.11.06 16:45 수정 2026.11.06 16:45

민사 분쟁·정치 갈등까지 형사사건으로…민생범죄 수사 품질 저하 우려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경찰수사품질 제고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사진=민수정 기자.

무분별한 고소·고발로 경찰 수사력이 분산되면서 정작 민생범죄 수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사 분쟁이나 정치적 갈등까지 형사사건으로 이어지면서 경찰의 수사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고소·고발 접수 단계에서 사건을 선별하고 경찰 단계에도 형사조정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유승익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은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경찰 수사 품질 제고방안' 토론회에서 "민사 사건이나 정치적 갈등을 수사로 해결하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우리나라 법제에서 이른바 '과잉 범죄화'된 부분을 크게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 부소장은 정치적 고발이나 공무원·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고발이 실제 기소로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그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관련 고발 사건은 2021년 1만2000여건에서 3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지만, 기소율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민사 분쟁에서 채무 변제를 압박하거나 소송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형사고소를 활용하는 사례도 문제로 꼽힌다. 피고소인은 혐의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경제적·정신적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동필 수사실무연구회 법무이사는 "현장에는 상상 이상의 사건이 들어오지만 반려되지 않고 있다"며 "말도 안 되는 70%의 사건 때문에 많은 경찰 인력이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사는 반드시 최후의 절차가 돼야 한다"며 "수사를 받는 것 자체가 대단히 불명예스럽고 무혐의나 불기소로 끝나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사건 접수부터 선별 장치 필요"

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모습./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수사를 줄이기 위해 사건 접수 단계부터 선별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검찰 단계에서 운영해 온 형사조정 제도를 경찰 수사에도 도입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유 부소장은 "일본은 고소·고발센터를 운영하면서 경력이 많은 경찰관이 사건번호를 부여하기 전 상담을 통해 사건을 선별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강 법무이사는 "검사가 더 이상 수사를 하지 않는 만큼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형사조정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고소·고발 남용을 막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악의적인 고소·고발에 경제적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유 부소장은 "독일과 프랑스는 고의나 중과실로 수사권을 남용하면 재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피고소인이 지출한 변호사 비용 등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새로운 제도 도입에 대한 신중론도 나왔다. 기존 제도를 보완해 불필요한 수사를 줄이는 방안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곽문준 경찰청 수사정책연구관 경정은 "형사조정 제도가 도입된다고 당장 경찰의 업무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를 담당할 행정인력을 확보하려면 관계 부처의 정원 반영 등에 1년가량이 소요된다"고 했다.

송지헌 서울경찰청 수사심의과 경정은 "입건 전 조기 각하 결정을 형사소송법에 두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경찰은 이미 '입건 전 조사 종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어떤 사건을 받아들이고 종결할지에 대한 재량을 설계하는 동시에 그 재량이 얼마나 공정하게 통제되는지도 고민해야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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