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먼저 출시된 신약을 국내 환자가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적용받아 처방받기까지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한 시점을 기준으로 약 2년(평균 23개월)이 걸린다. 우리 국민 3명 중 2명은 이 기간을 "너무 길다"고 여기며, 현행보다 63% 줄인 '8.5개월'이 가장 적정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와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신약 접근성, 국민에게 답을 묻다– 대국민 인식조사로 본 약가제도 개편 이후 과제' 포럼에서 임성수 한국갤럽 헬스케어조사실장은 "대국민 인식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7.6%(2064명)는 신약의 건강보험 등재기간(23개월)이 길며, '8.5개월'이 적정하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 7월 1~10일 전국 17개 시도에 거주하는 성인 3055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해외에서 개발·출시된 신약이 우리나라에서 적용되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먼저 식약처의 안전성·유효성 심사를 거쳐 승인돼야 한다.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임상적 유용성, 비용 효과성 관련 급여 적정성을 평가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약가, 예상 청구 금액을 협상한 뒤 보건복지부의 최종 고시를 통해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이 과정에서 신약이 식약처로부터 허가받기까지 평균 24개월, 허가 후 급여항목에 등재되기까지 23개월이 소요되는데, 환자는 해외에서 혁신신약이 출시돼도 비용 부담을 줄여 처방받기까지 평균 47개월을 손꼽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미국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은 허가까지 12개월, 급여항목 등재까지 21개월로 총 33개월이 소요된다.
이런 차이는 '선평가 후등재' 제도(우리나라)와 '선등재 후평가' 제도와의 차이점에서 비롯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컨대 일본은 신약 허가 후 3개월 내 건강보험에 먼저 등재하고, 독일은 허가 즉시 건강보험에 등재하면서 동시에 제약회사와 정식 약가, 등재 조건을 협상한다. 임 실장은 "한국은 신약 허가 자체는 선진국 수준으로 빨라졌지만, 건보 적용을 위한 모든 평가·검증을 끝낸 후 건보에 등재한다"며 "이번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8.3%가 이런 차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27일 복지부·심평원은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신속등재 추진방향 공청회'를 열고 시범사업 운영계획을 공개했다. 신속등재절차는 신약이 최종 허가받기 전부터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위한 준비 절차를 먼저 시작할 수 있게 해, 허가 이후 건보 적용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환자들이 신약을 더 빨리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대로라면 희귀질환 치료제가 신속등재 절차를 밟고 적정성 평가, 협상 간소화를 통해 건보 등재까지 걸리는 기간은 현행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짧아진다.
이번 설문조사에선 △희귀질환 신속등재제도 도입(74.7%) △심사 기간 100일 내로 단축(73.5%) △신속등재 대상 확대(71.5%) △혁신신약 예산 확대(69.9%) 등 주요 개선방안에도 70% 안팎의 높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특히 신속등재제도를 희귀질환뿐 아니라 다른 질환으로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71.5%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임 실장은 "조사에 따르면 국민은 혁신신약의 신속한 접근성 확대에 높은 공감대를 보였지만, '무조건 빠르게'가 아닌, 전문성·환자 중심성·재정 지속가능성 등을 갖춘 '신뢰할 수 있는 신속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혁신신약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실제 치료 기회로 더 빠르게 연결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2021~2025년 등재된 항암제 32개와 2022~2025년 등재된 희귀질환 치료제 20개를 분석한 결과 식약처 허가 후 건강보험 등재까지 각각 1년 10개월, 2년 11개월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이은영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환자들이 건강보험 적용을 기다리는 동안 비용 부담으로 치료받지 못하거나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위험이 있다"면서 "환자의 의견과 환자가 체감하는 치료의 가치를 급여기준 설정과 사후평가에 실질적으로 반영하고, 신속하고 투명한 등재 절차와 함께 기존 투약 환자의 치료 지속을 위한 보호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