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실 압수수색을 두고 진료 현장에 대한 강제적 수사가 이뤄졌단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소아응급실 의사들이 안전한 진료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해달라고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류정민 대한소아응급의학회장은 3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촌각을 다투는 응급실에 수사 인력이 진입하는 사실 자체가 의료진뿐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들까지 큰 당혹감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할 수 있다"며 "벼랑 끝 소아 응급 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 제도적 기준과 약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경기남부경찰청은 청색증(혈액 속 산소가 부족해 피부와 점막이 푸르스름해지는 상태)으로 치료를 받다 숨진 환아 관련 수사 과정에서 지난달 30일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압수수색했다. 의료계는 진료 도중 압수수색이 집행되면서 의료 행위를 위협했다고 반발했으나 경찰은 진료 방해는 없었단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날 회견 현장엔 류 회장을 비롯해 박수현 대한소아응급의학회 공보이사, 김도균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협의회장, 이지숙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장, 배우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장 등 관련 의료진 14명이 참석했다.
류 회장은 "응급실의 모든 처방과 기록은 컴퓨터 체계에 실시간 입력되며 기록을 수정해도 투명한 로그 기록이 고스란히 남는다"며 "굳이 수사관들이 진료 공간에 직접 들어오지 않아도 폐쇄회로(CC)TV와 전산 기록, 부검을 통해 그 어느 곳보다 투명하게 진료 과정과 원인을 증명할 수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아응급실에선 안타깝게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참담한 순간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의료진에게도 환자의 죽음은 그 무엇보다 큰 상처이자 고통"이라며 "사망한 아이를 치료한 의료진을 처음부터 잠재적 범죄자로 가정하고 진료 구역에 들이닥쳐 영장을 집행하는 방식은 의료진을 극도의 공포와 위축으로 몰아넣는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전날(29일) 경찰 고위 간부와 보건복지부 관계자 등이 아주대병원을 찾아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에선 조재호 병원장과 이지숙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장이 참석했다.
이 센터장은 "면담에서 경찰 고위 관계자들도 (수사 과정에서)응급의료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단 점을 인정하고 의료진이 겪었을 압박감과 상처에 공감하며 사과를 표했다"면서도 "(청색증 환아가 숨진)7월15일 진료가 충분히 이뤄졌음에도 경찰과 과학수사대가 의료인 동의 없이 현장에 들어온 점, 압수수색 영장 청구 경위와 집행 과정에 대해선 납득할 만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소속 교수 9명 중 7명이 사직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 센터장을 포함한 일부 교수들은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센터장은 "의사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집단 사직' '집단행동' 등 프레임을 통해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며 "현재도 센터 내 진료는 정상 운영되고 있다. 환자와 보호자가 불안에 떨지 않도록 언론도 도와달라"고 전했다.
이날 대한소아응급의학회는 응급실에 대한 명확한 경찰 수사 지침 제정을 재차 촉구했다. 정부는 경찰청, 의료계와 함께 응급실 수사 지침 마련을 논의 중으로 현재 관련 협의체 구성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도균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협의회장은 "무분별한 영장 집행에 대한 통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불가피한 경우 사전 협의와 법원 영장 심사 과정에서 의료 전문가의 의견(감정)이 필수적으로 반영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적인 환자 사망 사례에 대한 과도한 현장 조사 관행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