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지폐에서 윈스턴 처칠 전 총리 등 역사적 인물들이 사라지고 고슴도치와 올빼미 등 야생동물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영국 중앙은행 영란은행(BOE)이 발행하는 지폐 뒷면에서 역사적 인물의 초상화가 사라지는 것은 1970년 이후 처음이다.
14일(현지시간) 영란은행과 BBC 등을 종합하면 영란은행은 새 지폐에 대서양 퍼핀(바다오리), 헛간 올빼미, 유럽 땅뒤영벌(범블비), 유럽 고슴도치 등 야생동물 4종을 넣기로 했다. 이들은 각각 5·10·20·50파운드 지폐 뒷면의 중심 이미지로 사용된다. 어떤 동물이 어느 지폐에 들어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번 선정에는 시민 의견이 반영됐다. 야생동물 전문가들이 추린 후보 18종을 대상으로 약 48만명이 참여해 총 250만표 넘게 투표했다. 땅뒤영벌이 약 36만표로 전체 1위를 차지했고, 헛간 올빼미와 유럽 고슴도치는 각각 조류와 포유류 부문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대서양 퍼핀은 붉은 여우와 물총새보다 득표수는 적었지만 해양 생물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선정됐다.
현재 5파운드 지폐에는 처칠 전 총리, 10파운드에는 소설가 제인 오스틴, 20파운드에는 화가 윌리엄 터너, 50파운드에는 수학자 앨런 튜링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처칠의 초상화가 교체된다는 소식에 일부 정치권은 반발했다. 지난 3월 영란은행이 역사적 인물 대신 야생동물을 지폐에 넣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는 이를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wokery)이라고 비판했다. 케미 베이드녹 보수당 대표도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영란은행은 새 지폐 발행의 주된 목적이 위조 방지와 보안 강화에 있다고 설명했다. 최신 보안 기술을 적용하는 동시에 기존 지폐와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도안을 변경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여전히 약 7명 중 1명이 현금을 가장 선호하는 결제 수단으로 꼽고 있으며, 올해 2월 말 기준 시중 유통 현금은 915억파운드(약 162조5000억원)에 달한다.
반면 처칠의 손녀 에마 솜스는 정치권의 반응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영란은행은 지폐에 누구의 초상화를 넣을지 결정할 전적인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새 지폐의 크기와 색상, 지폐 앞면의 국왕 초상화는 유지된다. 영란은행은 지폐 디자인과 시험 및 인쇄에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