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런치리포트-출퇴근 재해, '산재'될까]

정부가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을 하다 사고를 당한 근로자도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노동계 오랜 숙원인 '출퇴근 재해 산재인정'이 이번에는 실현될지 주목된다.
5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국회에는 '출퇴근 재해 산재인정'을 골자로 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안이 19대 국회 들어서만 3건이나 발의된 상태다. 지난 2012년 9월 문대성 새누리당 의원, 2013년 11월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지난해 12월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 했다. 고용노동부도 지난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출퇴근 재해 산재인정' 추진 의지를 밝혔다.
현행 산재보험법에 따르면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만 산재를 인정받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을 하는 대다수 근로자들이 출퇴근시 사고를 당하더라도 산재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출퇴근 행위 자체가 업무행위는 아니지만 업무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출퇴근 행위를 노무 제공 활동의 일부로 봐야한다는 판단이다.
국회에 발의된 3건의 개정안은 '출퇴근 재해 산재인정'이란 골자는 같이 하지만 일부 내용에선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출퇴근 재해 인정형태'와 관련해서 문대성 의원안과 한명숙 의원안은 기존 '업무상 재해'에 출퇴근 재해를 포함시켰다. 반면 최봉홍 의원안은 기존 '업무상 재해'가 아닌 '통근재해'를 신설규정했다.
'출퇴근 경로'에 대한 규정도 미세한 차이가 있다. '통상적 경로와 방법(문대성 의원안)', '합리적 경로와 방법(최봉홍 의원안)'으로 출퇴근 시 당한 재해만 산재인정 대상에 포함시키는 개정안이 있는 반면, 한명숙 의원안은 이보다 더 포괄적이다. '출근하거나 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를 산재인정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이들 개정안이 내용적으로 상이한 면이 일부 있지만 '출퇴근 재해 산재인정'이라는 근본 취지를 같이하는 만큼, 병합해 처리해야 한단 입장이다.
국회 관계자도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던 중에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선 입법과정에서 보다 전향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며 개정안 처리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간 이들 개정안 처리에 미온적이었던 쪽은 정부였다.
정부는 이번에도 '단서 조항'을 달았다. 출퇴근 재해 산재인정을 위해선 노사정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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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노위 관계자는 "이미 고용노동부는 '출퇴근 재해시 산재인정' 관련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말까지 대책을 마련해오겠다고 했었다"면서 "정부의 '출퇴근 재해시 산재인정' 추진 의지가 '부처 업무보고용'이 아니라면 환노위에 계류돼있는 개정안 논의부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출퇴근 재해 산재인정', 공무원은 이미 되는데
#1. 평소 지하철로 출퇴근 하는 근로자 A씨는 퇴근 중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져 부상을 입었다.
#2. 4살짜리 딸을 둔 근로자 B씨는 출근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기 위해 어린이집으로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부상을 입었다.
근로자 A씨와 B씨는 현행법상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에 따르면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 이용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발생한 사고만 업무상 사고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A씨와 B씨의 신분이 공무원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산재보험법이 아닌 공무원연금법을 적용받는 공무원의 경우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 중 발생한 교통사고와 추락사고, 그 밖의 사고를 공무상 부상 또는 사망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는 현행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14조에 규정돼있다.
여기서 말하는 '통상적 경로'는 소요시간, 거리 등 제반 교통사정을 감안해 통상 이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로로서, 어느 정도 일관된 특정성을 가질 필요는 있지만 유일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사회통념상 대체성을 가지는 복수의 경로도 포함되고, 반드시 최단 코스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령 평소 동료직원과 '카풀(car pool)'로 출퇴근하던 근로자가 카풀을 하던 장소로 이동하던 중 당한 사고도 산재혜택을 받는다. 반면 출퇴근 중 사적 용무를 처리하기 위해 평소 출퇴근 경로를 벗어나 이동 중 당한 사고는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다.

이처럼 공무원의 경우 산재보험법이 아닌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사실상 출퇴근 재해시 혜택을 받고 있어 일반 근로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정치권에서 현행 산재보험법 개정을 시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 2012년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한 문대성 새누리당 의원도 "공무원의 경우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를 '공무원연금법'상의 급여지급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형평에 어긋난다"고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일반 근로자의
경우에도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를 업무상 사고로 인정함으로써 근로자에 대한 산업재해보상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험금 부담만 1조 증가"…재계 '출퇴근길 산재' 난색
고용노동부가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출퇴근 재해 산재인정' 추진 의지를 밝히면서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전적 부담 증가는 물론 자칫 '사고가 많은 기업'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관련 사용자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측은 "아직 정부가 이를 검토중이고 하반기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논의키로 한만큼 확정된 것이 없다"면서도 향후 출퇴근 산업재해 인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팀장은 "연간 산업재해 보험급여 지급액수가 3조8000억원을 넘어선다. 정부 연구용역에 따르면 '출퇴근 재해 산재인정'으로 보험급여 부담이 8000억원 증가한다"며 "산재 보험급여가 4분의1 가량 증가하면 결국 기업들의 보험료율도 함께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정부의 보험급여 증가 추계는 경찰청 교통사고 통계를 기반으로 마련된 것"이라며 "교통수단이 아닌 도보 등에서 벌어지는 사고까지 더하면 그 부담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대기업의 노무관련 간부급 인사 역시 "기업에서 제공하는 교통수단이 아닌, 사업주가 통제할 수 없는 자가용·대중교통 등을 이용한 출퇴근에서 발생하는 사고까지 전적으로 사업주에 책임을 지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독일·프랑스·영국·일본 등 출퇴근 산업재해를 적용하고 있는 국가들과 국내 상황 역시 다르다는 것이 재계의 설명이다.
임 팀장은 "이들 국가는 자동차보험 체계가 자리잡히기 전에 산업재해의 범위를 정했기 때문에 이를 지금까지 이어오는 것"이라며 "한국은 이미 자동차보험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힌 상태기 때문에 산재보험과 중복 여부 역시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출퇴근 산업재해를 인정한다고 해도 이를 업무상 재해로 구분할지 여부에 따라 기업들의 입장이 갈린다.
안정보건공단이 시행하고 있는 '사업장 무재해운동'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사업장들은 3년간 고용노동부의 정기감독을 면제받는다. 아울러 개별 사업장의 보험료율 역시 무재해 기간 등에 따라 추정된다.
독일·프랑스·영국 등은 출퇴근 중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구분한다. 반면 일본은 이를 개별재해로 별도 구분한다. 한국 역시 에에 대한 규정에 따라 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 면제 및 보험료 부담 정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 중소기업의 대표이사는 "대기업은 근로자들에게 이미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 출퇴근 중 사고에 대해서도 산업재해로 인정해왔기 때문에 부담이 오히려 크지 않다"며 "하지만 교통수단 제공이 어려운 작은 기업들은 직원들이 개별적으로 출퇴근하기 떄문에 산재제도가 바뀌면 보험료 부담으로 자금난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노조가 없는 영세한 사업장들은 보험료 부담이 높아지면 산재보험 가입 자체를 더욱 기피할 수 있는 만큼 중소기업들의 상황을 감안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막전막후속기록]"출퇴근 산재, 자동통과 동의못합니다"
정부가 '출퇴근 재해시 산재인정' 추진 의지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재임시절인 2012년 "노사가 공감한다면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할 때 생긴 재해도 산재로 인정하는 것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밝혔지만 이후 결과물은 없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취임 직후 국회 업무보고에서 통상적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시 발생한 재해에 대한 보상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연간 8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소요재원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출퇴근 재해시 산재인정'을 골자로 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처리에는 미온적인 입장을 보였다.
2012년 9월 문대성 새누리당 의원, 2013년 11월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지난해 12월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까지 총 3건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들 개정안은 아직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문턱 조차 넘지 못했다. 정부가 개정안 처리에 난색을 보였기 때문이다. 환노위 법안소위 논의도 단 한차례 열렸다. 지난해 2월18일 한명숙 의원의 안을 두고서다.
"아직 다른 보험과의 관계, 상호 노사가 분담해야 될 부담률이라든지 제도 설계의 구체적인 방안, 이 계정을 보험계정으로 둘거냐 별도 출퇴근재해 계정으로 둘 거냐 이런 여러 가지 틀이 아직 설계가 안 됐습니다. 시간을 좀 더 주시면 설계를 좀 더 해서 적절한 때가 되면 저희가 논의하자고 오히려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직 좀 준비가 너무 안 돼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정현옥 당시 고용노동부 차관
"준비할 게 뭐 있어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08년도에 제안한 거잖아요. 이채필 장관도 약속했던 거고. 그런데 이제 와 가지고 준비할 시간을 말씀하셔?-심상정 정의당 의원
"이게 아시다시피 자동차보험 하고의 상호 계정 정리하는 문제도 있고요, 그다음에 노사가 부담을 또 외국의 경우는 하기 때문에 간단치 않습니다. 노사 의견도 수렴해야 되고 할 일이 많습니다"-정 차관
결국 환노위 법안소위 위원들은 지난해 말까지 정부 연구용역 결과를 보고하는 조건으로 개정안 처리를 미뤘다. 이후 개정안 처리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 여야는 당시에도 개정안 처리가 흐지부지 될 수 있단 우려를 제시했었다. 일부 법안소위 위원들은 정부가 연말까지 정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개정안을 자동처리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런데 이 출퇴근 사고의 문제는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고"-심상정 정의당 의원
"한 40년 됐어"-최봉홍 새누리당 의원
"정부, 앞으로 올 연말(2014년 말)까지 개정 요구안에 대한 정부 측 입장을 (정리해 오십시오)."-김성태 새누리당 의원(법안소위위원장)
"연말까지 안 되면 자동 통과로 (합시다)"-심 의원
"오케이. 자동 통과에 찬성"-이종훈 새누리당 의원
"자동 통과합시다. (여당도) 자동 통과 찬성하셨습니다"-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동의할 수 없습니다"-정 차관
'출퇴근 재해 산재인정', 해외에선 이미 시행중

일본과 독일, 프랑스 등 일부 해외국가에선 이미 출퇴근 재해를 산업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64년 '출퇴근 재해는 산업재해로 인정돼야 하되, 다른 사회보장제도에 의해 완전히 보호되는 경우에는 예외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제121호 협약(업무상 재해 급여협약과 권고)'을 체결했다.
ILO가입국 중 24개국은 이 협약을 비준했다. 한국은 비준하지 않았다.
일본은 지난 1973년 12월1일부터 '통근재해보호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노동자재해보상보험법(노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일반 '업무상 재해'와의 성격차이를 인정해 별도로 '통근재해'로 설정했다.
'통근'의 범위에 대해선 △주거지와 직장 사이의 왕복 △후생노동성령에서 정하는 직장으로부터 다른 취업의 장소(외근)로의 이동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 근로자가 위의 이동 경로를 일탈하거나 이동을 중단한 경우에는 통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독일은 사회법전 제7권(SGB VII) 제8조 제2항에서 출퇴근 재해를 규정하고 있다. 일본과 달리 독일은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에 포함한다.
즉 △주거지와 직장 사이의 직접적 통행로 △근로자가 근무지에 숙소를 마련한 상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이 사는 집으로 오가던 중 발생한 사고 등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
특히 △출퇴근길에 아이를 맡기거나 찾을 경우 △다른 근로자와 공동으로 차량을 이용해 출퇴근하기 위해 주거지와 직장 사이의 직접적 통행로를 우회하는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
아울러 독일의 산재보험 재원은 전액 사업주가 부담, 출퇴근 재해와 관련해서 근로자가 부담하는 별도 비용은 없다.
프랑스는 출퇴근 재해를 '직업위험'으로 간주해 보호대상으로 삼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1946년 10월30일 법률에서 출퇴근 재해를 산업재해 대상에 포함시켰고, 이 법률에 입각해 프랑스 '사회보장법전(Code de la Securite Sociale)'에서 산업재해로 인정되는 출퇴근 재해에 대한 규정을 명시했다.
보호대상이 되는 출퇴근 재해의 범위와 판단기준도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근로자의 주된 주거지 뿐 아니라 △안정적인 거주지로서의 의미를 갖는 부차적 주거지 △근로자가 가정생활을 위해 일상적으로 왕래하는 모든 장소에서부터 직장 사이를 출퇴근 재해 보호 경로로 설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