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현정(破邪顯正), '그릇된 것을 깨고 올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부처의 가르침에서 나온 말이다. 사악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르는 일은 불도(佛道)를 따르는 승려가 추구해야 할 이상이기도 하다.
세속과 떨어져 절 안에서 공부하고 수행하는 보통의 모습과 달리 세상에 나와 '문화재 환수'라는 특별한 방법으로 파사현정의 뜻을 실천하고 있는 승려가 있다. 불법으로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반환하기 위해 힘쓰는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의 대표 혜문(42) 스님이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하던 스물다섯 평범한 청년은 1998년 승려가 됐다. 평소 절에 다니거나 불교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아니었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출가했다. 2004년 공부하러 일본에 갔다가 도쿄의 한 고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책 '청구사초(靑丘史草)'는 스님이 된 그의 삶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또 다른 어딘가로 끌어 당겼다.
도쿄대 쓰에마쓰 교수가 쓴 '청구사초'에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도쿄대 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이 적혀있었다. 혜문 스님은 필자가 책을 지인에게 선물하며 '저자 걸정(著者 乞正·내용의 오탈자를 바로잡아 달라)'이라고 쓴 짧은 글을 읽고 조선왕조실록을 한국에 돌려놓으라는 '일종의 계시'로 여겼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1년이 넘는 자료 조사를 거쳐 실록이 왜 도쿄대에 갔으며 왜 불법인지 철저한 조사를 통해 밝혔다. 2006년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를 만들어 본격적인 환수 운동에 나선 그는 일본을 8차례 찾아간 끝에 같은 해 5월 조선왕조실록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문화재 환수에도 '인연의 법칙'이 적용합니다. 원래 도쿄대는 국립대학이었는데 2006년 3월 때마침 독립대학 법인으로 전환이 됐어요. 국유재산이었다면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승산 없는 싸움을 했을 텐데, 다행히 도쿄대 총장과 협상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 때'를 놓쳤으면 환수는 어려웠을 겁니다.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으로 돌아올 인연이었던 거죠."
조선왕조실록 반환을 시작으로 혜문 스님은 본격적인 환수 운동에 뛰어들었다. 일본 궁내청에 있던 조선왕실의궤(2011), 미국 LA카운티 박물관에 있던 문정왕후 어보(2013), 한미 정상회담 때 돌려받은 대한제국 국새 및 조선왕실 인장 9점(2014)까지 국보급 문화재 4건(총 1300점) 환수 성공 뒤에는 그의 이름이 따라붙었다.
외국에 흩어진 수많은 문화재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해 반환을 추진하는지 물었다. 그는 "민족의 혼이 깃든 신물(神物)만이 그 대상"이라고 답했다. 책이나 그림, 도자기 등이 아닌 왕조실록이나 옥새, 어보 같은 신물의 환수만 고려한다는 것이다. 그는 "민족의 정체성이 담긴 문화재는 나라가 망해 강제로 빼앗기지 않는 이상 외국에 양보할 수 없다"며 "불법적으로 반출됐다는 증거를 찾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혜문 스님은 "신물이 때를 선택해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겸손하게 이야기했지만, 문화재 환수는 수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는 '냉정한 운동'이었다. 수년 전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워 단계를 하나씩 밟아나가야만 마침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으로 유출된 문화재를 되찾는 만큼 "감정을 앞세워 비굴하게 돌려받거나 돈을 주고 사오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혜문 스님이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은 국보 1호를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는 "1934년 조선총독부가 국보 1호로 지정한데다 최근 부실과 비리로 얼룩진 숭례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보물로서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한국인의 자긍심과 민족의 얼을 상징하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 1호로 추진하자"는 내용의 서명운동을 진행했고, 현재 1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11일까지 서명을 받은 뒤, 국보 1호 변경을 요청하는 서신을 문화재청에 공식 접수할 예정이다.
혜문 스님은 "10년 전 부처님과 약속한 세상을 변화시킬 50가지 목표를 이루면, 평범한 수행자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를 되찾는 일을 포함해 현충사 충무공 장검 색칠 개선, 동학군 장군 유골 안장 등 현재까지 48건의 목표를 이룬 그는 "앞으로 2건만 더 채운 뒤 실무에서 물러나 후학을 양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화재 환수 운동은 30대의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20대는 경험과 지식이 부족하고 40대부터는 각종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죠. 20대부터 가르쳐 이제 30대가 된 저의 제자들이 앞으로 문화재 운동을 이끌어 갈 겁니다. 제가 칼과 활을 좀 다를 줄 아는데요. 후학들에게 '무엇을 베고 무엇을 쏘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무엇은 세상에 있는 모든 '불의'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