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해 사용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 단어 사용의 오류는 좀처럼 '틀린'것을 말할 때는 발생하지 않는다. '틀리다'고 말해야 할 것을 '다르다'고 실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다름을 말하려는 의도였으나 틀림이라고 잘못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집단·단합 문화가 발달한 한국 사회에서는 이처럼 나 또는 우리와 '다름'을 '틀림'이라고 부정하는 사고가 깔려 있는지 모른다.
이에 반해 유럽은 비교적 다름이 그 가치를 인정받는 관용사회로 알려져 있다. 유니버시티 런던UCL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네덜란드 역사 교수로 재직 중인 벤자민 J. 카플란은 근대 유럽의 종교 갈등 극복 과정이 유럽을 관용사회로 만들었다고 본다. 그는 책 '유럽은 어떻게 관용사회가 되었나'를 통해 종교 갈등으로 분열됐던 유럽 사회가 어떻게 다시 종교를 통해 관용 사회로 변모했는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카플란에 따르면 근대 유럽은 신앙에 의해 분열된 사회였다. 하지만 종교 갈등으로 인한 전쟁과 종교의 세속화를 겪으면서 다른 종교에도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국왕의 '시혜'적 측면이 강했던 종교의 자유는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개인의 권리로 진보했다.
카플란은 서양의 종교의 자유를 이슬람의 '밀레트'와 비교설명함으로써 그 관용의 특성을 강조했다. 밀레트는 이슬람에사 이슬람교가 아닌 유대교, 그리스 정교 등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부여하는 제도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개인의 자연권으로 보장되는 반면 밀레트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 집단에게 종교의 자유를 부여한다. 이슬람 안에 여러가지 종교 단체는 존재할 수 있으나 각 단체 내 개인에게 종교의 자유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카플란은 그러나 관용정신이 뿌리 내린 후에도 유럽 땅에는 히틀러의 나치즘·스탈린의 독재 등 불관용이 일으킨 학살과 전쟁의 역사가 되풀이 됐음을 지적한다.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관용의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카플란은 말한다. "사랑을 베풀 필요도 없다. 그냥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살면 된다".
◇'유럽은 어떻게 관용사회가 되었나'=벤자민J. 카플란 지음. 김응종 옮김. 푸른역사 펴냄. 592쪽. 3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