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만 이뤄진 도시에 사는 아이가 있다. 비가 저수통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자유롭고 유쾌한 빗방울들의 삶이 종말을 맞는다"고 표현하고, 생애 처음 읽는 책 '맥베스'를 보며 전율을 느끼는 감수성을 지닌 아이다.
이런 아이의 하늘에서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소들이 풀을 뜯던 들판에 비행장이 생기고, 아이의 집 담벼락에는 '90인 수용 방공호'라고 쓰인 게시판이 나붙는다.
하지만 아이는 비행장을 메운 비행기를 "우리 비행기"라 부르며 애정을 쏟는다. 자신의 집만 '90인 수용 방공호'라 불리자 넓은 지하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폭격으로 엉망이 된 거실을 가여워한다.
소설 '돌의 연대기'는 전쟁에 낯선 어린아이의 관점으로 전쟁의 참상을 그린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가 묘사한 전쟁은 때로는 희극적인 양상을 띤다. 전쟁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둡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유쾌함 속에서 문득문득 적나라한 전쟁의 모습이 그려질 때 비극은 한층 잔혹하게 다가온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돌의 도시'는 오토만제국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석재 건물이 즐비해 중세시대를 연상시킨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00년대지만 도시에는 유령 이야기가 돌고 닭 뼈로 미래를 점치는 등 주술적 풍습이 남아있다. 이러한 공간에 꿈꾸는 듯한 아이의 시선이 더해져 도시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독자에게 환타지 동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주는 이 작품은 사실 작가 유년의 회고록이자 자전적인 소설이다. 알바니아의 소설가 이스마일 카다레는 고향 지로카스트라에서 경험한 제2차세계대전 이야기를 환상적이면서도 담백한 문장으로 그려냈다. 오랫동안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돼온 이스마일 카다레의 섬세한 상상력과 시적인 문장을 음미하는 즐거움이 크다.
◇돌의 연대기=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문학동네 펴냄, 400쪽./1만4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