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기회로 잡아 조선의 항구를 개방하도록 하는 강화조약을 맺자고 했다. 일본은 '일본 국기가 게양된 운요호에 조선 수군이 왜 포격했느냐'고 조약을 이유를 내세웠다.
당시 조선 임금과 조정에선 왕을 상징하는 어기(御旗)만 있었을 뿐 국기에 대해선 개념조차 없었다. 뒤늦게 국기에 대한 의미와 중요성을 알게된 고종은 1882년 김홍집과 역관 이응준에게 국기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고종은 태극기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해 백성을 뜻하는 '흰색'과 관원을 뜻하는 '푸른색'과 임금을 뜻하는 '붉은색'을 화합시킨 동그라미를 그려넣은 기를 제작하게 했다.
하지만 이 깃발은 다소 일본 제국의 국기와 비슷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김홍집은 "반홍반청의 태극 무늬로 하고 그 둘레에 조선 8도를 뜻하는 팔괘를 그리면 일본 국기와 구분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태극기 문양이 정해졌다.
어기인 '태극 팔괘도'를 일부 변형해 제작된 최초 태극기는 1882년 5월 조선과 미국의 수호통상조약 때 처음 사용됐다. 박영효는 1882년 9월 고종의 명을 받아 특명대사 겸 수신사 자격으로 일본에 가게 됐는데, 배 안에서 태극 문양 둘레에 그려진 팔괘 대신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를 그려 넣은 태극기를 만들었다.
그 이듬해인 1883년 오늘(3월 6일) 고종은 왕명으로 태극 모양과 4괘가 디자인된 국기를 조선의 정식 국기로 선포했다. 하지만 태극기는 도형의 통일성이 없이 사용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1949년 10월 대한민국 국기법 제4조에 따라 현재와 유사한 디자인과 규격으로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