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소진사회'란 말이 화두로 떠올랐다. 카페인이 잔뜩 들어간 커피나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밤을 지새우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모든 것을 하얗게 불사르며 끝장을 본다.
'번아웃 증후군'이 바로 이 소진사회의 결과물이다.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이 극도로 쌓였을 때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증상이다. 만성 피로와 불안,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 방향성 상실, 자기혐오도 동반한다.
대개 이들은 현재의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너무나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해오던 사람인 경우가 많다. 주 40시간 이상의 노동도 마다 하지 않지만 그 열정과 헌신이 끝내 자신을 갉아먹게 되는 것이다.
'너무 성실해서 아픈 당신을 위한 처방전'의 저자 파스칼 샤보는 '번아웃 증후군'을 개인이 아닌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질병이라고 진단한다. 과거 개발시대를 이끌던 이들도 이제는 여지없이 개발의 희생자로 전락해버렸다. 끊임없는 착취를 통해 이뤄낸 성과는 일부에게만 돌아가고 다수는 그 폐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샤보는 번아웃 증후군과 나태함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노동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번아웃은 빈둥거리고 싶은 욕망 때문에 발병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번아웃 환자들은 본래 너무도 성실하고 열정적이고 주어진 과제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그런 성향이 문제가 되어 번아웃이 발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번아웃의 문제를 노동과 나태의 대비로 이해하는 건 크나큰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20쪽)
당초 인간은 노동이 자신을 해방할 것이란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강도 높은 노동환경, 불공정한 대우와 불충분한 보수, 미흡한 규제, 고삐 풀린 시스템, 너무나 긴 노동시간 등은 노동이 자신을 갉아먹는 올가미로 변질되게 만들었다.
샤보는 특히 여성의 번아웃 증세에 한 장을 할애해 밀도있게 다룬다. 남성이 만들어 놓은 남성을 위한 노동세계에서 이중고를 겪어야 하는 점을 짚은 것. 여성은 남성들이 느끼는 중압감에 더해 동일노동에 대한 적은 보수, 집안일과 양육에 대한 부담감과 죄책감, 일부 노동환경에 내재된 남성우월주의를 견뎌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문명이 낳은 이 질병 앞에서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샤보는 "하루 빨리 인간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며 "인간을 더욱 착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간을 괴롭히거나, 인간의 한계를 놓고 사기극을 벌이는 모든 시스템은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번아웃 증후군을 낳은 경제·기술 중심의 논리를 부차적인 자리에 되돌려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곧 오늘날 인류에게 부과된 새로운 투쟁 과제이자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되찾는 길이란 '처방전'이다.
◇너무 성실해서 아픈 당신을 위한 처방전-굿바이 번아웃=파스칼 샤보 지음. 허보미 옮김. 함께읽는책 펴냄. 192쪽/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