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오직 당신만 남는 거야. 혼자가 되는 거지. 그리고 당신도 곧 사라질 테니."
이 질문에 노철학자 폴 리쾨르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사라질 거라면 지금은 확실히 존재하는 셈이군! 가장 큰 신비는 죽음이 아니라 탄생이지. 최대한 먼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나는 이미 태어나 있거든. 왜 나는 나일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태어났음을 받아들이는 거야. 다시 말해 자신의 존재에 '네'라고 긍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지."
리쾨르는 다양한 해석들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의 갈등을 중재할 줄 아는 대화의 철학자였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고 그 역시 1940년 독일군 포로로 5년간 생활을 했으나 선과 악, 낙관주의와 염세주의 등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삶 속에 이미 슬픔이 내재해 있는 걸. 즐겁게 삶이 싹 트는 그 순간부터! 그게 바로 삶의 역설이지. 우리는 탄생과 죽음을 분리할 수 없어. 마찬가지로 문제제기 없는 긍정, 의심 없는 신뢰, 비판 없는 동의란 존재하지 않아." 그는 모든 관점들의 화해를 꿈꾸기보다 언제나 불화, 괴리, 분쟁이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선택하지도, 결정하지도 않은 것들에 '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913년 프랑스 남부 발랑스에서 태어난 리쾨르는 고등학교에서 스토아 철학자였던 교사 로랑 달비에즈의 영향으로 철학에 눈을 뜬다. 지적 스승 가브리엘 마르셀도 만났다. 마르셀은 '실존주의'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기독교 철학자다. 1950년 리쾨르는 그의 저서 '의지의 철학' 전반부에 해당되는 논문 '의지적인 것과 비의지적인 것'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책은 리쾨르와 올빼미와 대화하는 픽션 형식으로 그의 사상과 삶을 풀어내고 있다.
◇존재와 세계를 긍정한 철학자 리쾨르=올리비에 아벨 지음. 정기헌 옮김. 함께읽는책 펴냄. 72쪽/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