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사흘 동안만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엔 나를 가르쳐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의 얼굴을 보고, 산과 들로 나가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다.
둘째 날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트는 모습을 볼 것이며,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본다.
셋째 날은 큰 길로 나가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다. 점심 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즐기고, 저녁엔 황홀한 네온사인을 보며 집에 돌아와 마지막으로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겠다.(헬렌 켈러의 저서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장애를 이겨내는 극복 의지, 긍정적인 삶의 태도, 사회적 소외자에 대한 배려를 주제로 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다. 바로 헬렌 켈러다.
1880년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19개월 때 성홍열과 뇌막염에 걸려 위와 뇌에서 급성출혈이 있었다. 이로 인해 평생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귀는 들리지 않고, 눈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놓인 헬렌 켈러는 7살 때 앤 설리번이라는 특수교사를 만난다. 설리번은 어둠 속을 헤매며 어떤 외부 자극에도 격렬한 저항만 한 켈러에게 말과 글은 물론 인생의 의미를 알려준다.
설리번은 이후 40여년간 켈러의 정신적 지주가 됐고, 현재까지도 이상적인 스승의 표본으로 평가된다. 갇혀 있던 켈러의 마음이 열리게 된 건 손바닥으로 글씨를 써 대화하는 방법인 '지화법'(指話法)을 통해 '인형'이란 말을 알게됐을 때다.
설리번은 켈러에게 인형을 쥐어준 다음 손바닥에 'd-o-l-l'이라고 써준다. 켈러는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설리번이 반복해서 알려주자 보고 듣지 못함에도 '인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인식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켈런의 지적호기심이 터지면서 배움이 시작됐다.
스승인 설리번을 지치게 할 정도로 지식에 대한 욕구를 채우던 그는 결국 1900년 하버드대학의 레드클리프칼리지에 입학하게 되고, 이후엔 시청각 중복 장애인으선 최초로 인문계 학사를 받은 인물이 된다.
대학을 졸업하며 전국적으로 유명인사가 된 켈러는 장애인 학교나 도서관 건립기금 마련 등 장애인을 위해 강연은 물론 영화에도 출연한다. 그는 단순히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표상에 머물지 않았다. 사회적 소외자·약자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실천적인 사회주의자 지식인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미국 사회당에 입당해 자본주의 병폐를 비판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끊임없이 강조하며 기득권 보수주의자들과 맞선다. 아동노동과 인종차별·사형제 반대 운동도 벌이고, 여성참정권을 주장하기도 하면서 미국 전역에 유명세를 떨친다.
그러던 중 1961년 지속적인 뇌졸중에 시달린 후 집에만 머물다 48년 전 오늘(1968년 6월1일) 영면한다. 켈러의 장례식은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거행됐고, 그의 유해는 영원한 스승이자 인생 동료인 설리번 옆에 놓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