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는 인간의 힘…"예술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김지훈 기자
2016.07.23 03:10

[따끈따끈 새책] 재일교포 정치학자 강상중의 '구원의 미술관'…존재만으로 감동을 주는 예술 이야기

‘비애미’(悲哀美). 일제 강점기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년)가 조선백자의 쓸쓸한 자태를 예찬하면서 규정한 조선의 미학이다.

야나기는 조선 미술품의 주조색인 백색을 결핍감과 슬픈 정서로 연결했다. 그리고 이를 한민족의 정서로 규정했다. 그가 정의한 조선의 백색은 한민족의 한(恨)과 애상을 대변하는 색으로 지금도 널리 인용된다.

하지만 재일 정치학자 강상중은 다르게 봤다. 그는 백자에서 비애미 대신 ‘광대무변’(廣大無邊·너르고 커서 끝이 없음)의 세계를 읽었다.

그는 ‘구원의 미술관’에서 이렇게 말한다. “흰색은 시원인 동시에 종말을 표현하고, 탄생인 동시에 죽음을 품고 있다. 흰색은 애수나 비극의 색일 리가 없다.” 더불어 야나기가 일본의 통치에 놓인 조선 상황을 빗대 조선의 예술품을 과도하게 비극적인 정서로 치장했다고 비판한다.

그가 백색의 조선 예술품에서 발견한 풍요로움은 어머니와 추억이 바탕이다. 그는 조국의 전통에 따라 여러 의례에서 어머니가 입었던 흰 저고리가 기쁨도 슬픔도 경계 없이 서로 녹아들어 하나가 되는 광대무변과 ‘뇌락’(磊落·마음이 너그러워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고 기개가 씩씩하다)의 정서로 다가왔다고 회고했다.

그는 자신이 만난 미술품과 그와 연관된 추억과 고민을 합쳐 자신만의 예술론을 펼친다. 도쿄대 정교수였던 2009년 4월부터 2년간 일본 NHK방송의 ‘일요 미술관’을 사회를 맡으며 소개한 예술 작품과 함께 정체성 혼란을 겪던 시기에 만난 그림 이야기를 토대로 한다. 무엇보다 그는 전문가(미술,평론가)가 아닌 비전문가(정치사상 전공)로서, 동시에 재일 교포라는 ‘마이너리티’(비록 재일 교포 가운데 도쿄대 정교수가 된 최초의 인물이지만)의 시선임을 감추지 않는다.

저자는 청년 시절 독일에서 마주한 알브레히트 뒤러의 걸작 ‘자화상’에서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알브레히트 뒤러, 노리쿰(독일 남쪽 지방) 사람, 불후의 색채로 스스로를 그리다, 28세.’라는 글귀가 쓰인 그림이다.

저자는 슬픔과 격정, 자애가 뒤섞인 뒤러의 모습을 보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걷어내고 미약한 희망의 불빛을 봤다. 그가 뒤러의 자화상으로부터 받은 물음은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이 책의 원제다. ‘나는 여기에 있어.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책은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일본 사회 전체가 혼란스러웠던 2011년에 나왔다. 역자는 “제목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말았다”고 밝혔다. 무기력과 우울에 빠진 구성원에게 예술에서 발견한 미약한 희망을 전달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구원의 미술관이란 한국 번역판 제목은 그런 그의 예술관을 대변한다. 그림은 특정한 선과 형태, 색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존재지만 이 같은 가상의 무엇인가가 미의 진실과 인생의 심연을 들여다볼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동일본 대지진 사건과 같은 대참사를 겪었지만, 인간을 구원의 길로 이끌 수 있는 예술에서 작은 위로를 받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받아들이는 힘’(부제)을 믿기 때문이다.

◇구원의 미술관=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사계절 펴냄. 240쪽/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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