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생 삶의 일터를 지켜온 '아버지'들의 노동을 묻다

박다해 기자
2016.11.19 07:03

[따끈따끈 새책]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아버지'라는 이름의 노동에 대한 성찰

"우리 어릴 때 이런 소리를 들었어. 어떤 나라에서는 대학교수보다 보일러 기술자가 돈을 더 받는다고. (우리나라는)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 그렇게는 안 되어도 최소한 '동등한 인간적 대우'를 받도록 해야 하는 거야. 아직도 사회에서 그렇게 대접을 하니까 기능직이라는 자부심이 별로 없는 거야." (101쪽)

손으로, 땀으로 묵묵히 일하며 현대사의 궤적을 만들어온 아버지들의 삶을 활자와 사진으로 고스란히 옮겨 담았다. 시인 겸 르포작가 오도엽씨의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은 만리재 기슭의 '성우이용원' 이발사 이남열씨, 낙산 자락 '일광세탁소'의 김영필씨, 모래내 너머 '형제대장간' 류상준씨, 응암오거리 '성원양복점'의 임명규씨 등 근대화를 이룬 아버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받아 적었다. 노동 문제에 천착해 온 작가는 1년 여에 걸쳐 9명의 '아버지'를 만났다. 여기에 작가의 아버지 이야기가 더해져 총 10명의 자서전이 완성됐다.

작가는 수십 년 동안 고집스럽게 일터를 지켜온 아버지들에게 "당신에게 노동은 어떤 의미인가" 묻는다. 어깨 너무 배운 손재주로 반평생 직업을 이어 온 이들은 어느덧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장인의 반열에 올랐다. 남의 방식을 허투루 따르지 않고 자신이 터득한 노동방식을 고수한다.

"연장을 제대로 갈아야 기술자가 되는 거야. 가위도 못 가는 놈이 무슨 이발을 해." 이남열은 자신이 쓰는 가위를 갈지 못하는 이발사에게는 머리를 맡기지 말라고 한다. (중략) 자신이 직접 날을 갈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는 뭘까. 노동자가 노동 도구를 장악하고 명령하지 못하면 노동자 자신이 노동의 주체가 아닌 부품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 아닐까. (32~34쪽)

이들에게 노동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을 넘어 곧 자신의 정체성이자 삶 그 자체가 됐다. 효율성과 경제성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파편화되고 세계화로 값싼 노동력을 '구매'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노동의 가치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것'으로 변질됐다. 그래서 아버지 세대가 풀어놓는 노동의 의미와 노동자의 정신은 언뜻 청년세대들에겐 생경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마음 자체가 틀렸어. 그럼 안 되지. 노력해서 하려고 하는 게 없고 쉽게 돈 벌어 먹으려고. 그냥 한꺼번에 후다닥 해서 돈 벌라 하고. 다 위에 가서 한탕 해가려 하고. 뭐 좋은 자리 가서 후다닥 벌라 하고." (280쪽)

이처럼 노동의 가치가 사라진 곳에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존엄성도 사라져버렸다. 사회가 정한 일자리의 값어치와 노동이 지닌 본연의 가치 사이의 괴리에서 '노동자 아버지'가 된 젊은 세대가 '일과 삶의 관계'를 고민하고 노동의 의미를 물어야 하는 이유다.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 속 아버지들의 주름진 손과 애환이 담긴 좁은 일터의 풍경, 그리고 그들이 풀어내는 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삶의 의미를 함께 반추하게 한다.

"일자리는 한없이 가벼워질 수 있으나 일의 가치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절대적 지위를 누릴 것이다. 인간에서 노동을 빼면 문명 이전 시대에 동물과 자리다툼을 하던 존재와 다르지 않다." (313쪽)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오도엽 지음. 이현석 사진. 한빛비즈 펴냄. 320쪽/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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