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하늘과 검은 비행기. 대로변에 엄마가 두 팔을 벌린 채 누워 있어요. 우리가 엄마에게 일어나라고 애원해도, 엄마는 일어나지 않아요. 군인들이 엄마를 비옷에 싸서 바로 그 자리에, 모래땅 속에 묻었어요. '우리 엄마를 구덩이에 묻지 마세요! 엄마는 깨어 있어요….' 커다란 딱정벌레 같은 것이 모래땅 위로 느릿느릿 기어 다녔어요."
이제는 어른이 된, 6살의 꼬마 제냐 벨케비치가 기억하는 1941년 6월의 풍경이다. 지금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은 아이들의 눈에 이렇게 비쳤다. 100년이나 마을을 지켜온 보리수나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붉은 선인장 꽃이 피어야 할 자리에 불꽃이 번져있는 죽음의 시간들. 아이들은 두려움에 '코마' 상태에 빠지거나, 실성해 쥐를 잡아먹으려 하고, 기르던 고양이를 폭격 속에 버려두고 혼란스러워하는 방식으로 이 비정상적인 상황에 반응한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마지막 목격자들'은 '전쟁고아클럽'과 '고아원 출신 모임 101명'을 인터뷰해 아이들의 목소리부터 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를 복원해낸다. 인터뷰 대상이 된, 이제는 어른이 된 아이들은 저자의 모국에 사는 사람들이다.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와 더불어 소련의 서쪽 경계선에 위치한 소연방 국가였던 벨라루스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극심한 참상을 겪어야 했다. 독일이 독소불가침 조약을 느닷없이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바람에 평온한 일상은 아무런 대비 없이 하루아침에 짓밟혔다. 나치 독일은 소련 전역을 공격하기 위한 전초지로써 벨라루스 공화국이라는 괴뢰정부를 세운 뒤 이들의 삶을 4년 동안 짓밟았다.
이 기간 벨라루스의 628개 마을이 주민과 함께 불살라지고 인구는 4분의 1이 사라졌으며, 1945년 고아의 수는 2만 5000명에 달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나치 독일의 점령지였다는 이유로 소련 정부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당하기까지 한, 모국의 아픔. 저자는 이 아픔을 가장 작고 무기력한 존재였던 어린이들의 목소리라는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마지막 목격자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연진희 옮김. 글항아리 펴냄. 420쪽/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