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도 하고 사기도 친다…우리가 몰랐던 '유전자 사회' 이야기

이해진 기자
2016.12.24 06:24

[따끈따끈 새책]유전자 사회…인간 사회보다 합리적인 유전자들의 세상

어떤 사회가 있다. 이 사회 구성원들은 고심 끝에 좋은 지도자를 뽑기 위한 방책을 강구했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하기로 한 것.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누가 도덕적으로 우월한지 무슨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또 그 판단은 누가 내릴 것인가?

인간 사회 이야기가 아니다. 한 남성과 한 여성이 만나 자식을 낳을 때, 몸 속 유전자들이 자식에게 어떤 유전자를 물려줄 것인지를 두고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장면이다. 유전자 일생의 최대 목표는 인간의 몸을 타고 세대에서 세대로 계속 전해져 끝까지 생존하는 것. 그런 유전자에 부모 유전자의 절반씩밖에 물려줄 수 없는 인간의 번식 시스템은 너무 잔인하다.

게다가 어떤 유전자가 '좋은' 유전자인지도 알기 힘들다. 부모 세대에는 좋다고 생각했던 유전자가 자식이 살아가는 환경에서는 좋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유전자는 그냥 '우연'에 맡겨 버리기로 했다. 하자가 있든 능력이 뛰어나든 가리지 않고 공정하게 한 장씩 티켓을 준 것이다. 인간은 그동안 당첨 확률 50%의 위험한 도박을 통해 번식해온 셈이다.

책 '유전자 사회'는 유전자가 '생존'이라는 공통의 목표 아래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그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아 살아간다는 비유를 들어 유전자 세계를 알기 쉽게 풀어냈다. 저자인 이스라엘 유전학자 이티이 야나이의 말처럼, 마치 오늘도 다른 사람들과 부대 끼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소인국을 보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사회에나 사기꾼은 있는 법. 유전자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신생아 2만명 가운데 1명이 걸리는 왜소증이라는 병이 그렇다. 왜소증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연골이 뼈가 되는 과정에 문제가 생겨 팔과 다리가 짧은데 대부분 아버지의 정소에서 정자가 만들어질 때 생기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원인이다.

그런데 돌연변이는 원래 평균 세포 분열을 할 때마다 유전체의 60억 개 염기 중 한 개보다 더 적게 생긴다. 따라서 1백만 태아 중 하나 미만의 발생률을 보여야 맞다. 그렇다면 무엇이 왜소증을 더 높은 발생률로 일어나도록 하는가? 바로 돌연변이 유전자의 영악한 속임수 때문이다. 이 돌연변이유전자는 다른 세포들보다 1천배 더 많은 정자를 만든다. 겉으로는 다른 유전자들과 똑같이 한 장씩 티켓을 쥐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다음 세대로 가는 승률이 훨씬 높은 셈이다.

이처럼 책에는 사기 치는 유전자, 동료 유전자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는 유전자, 사고를 치되 쫓겨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치는 유전자, 열심히 일만 하는 유전자 등 인간과 참 많이 닮은 유전자들의 모습이 소개돼 있다. 서로 지지고 볶으며 생존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유전자들이 왠지 기특한 동시에 짠하게 느껴지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유전자 사회=이타이 야나이·마틴 럴처 지음.이유 옮김.을유문화사 펴냄.344쪽/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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