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침묵의 신 하포크라테스는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갖다 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침묵하라'는 뜻이다. 이처럼 '침묵'은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궁한 가치를 이어오고 있다.
프랑스 역사가인 알랭 코르뱅은 '침묵의 예술'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침묵이 가진 역사적, 예술사적 의미를 재조명한다. 저명한 작가, 예술가, 철학자, 역사학자들이 글과 작품에 묘사한 '침묵'을 조명하고 이로부터 침묵의 가치를 되새긴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틀어박혀 입을 다물고 침묵을 즐기며 밤마다 글을 쓸 수 있는 호텔 방을 갖고 싶다"고 했고, 앙투안 드 생떽쥐베리는 "사막에는 정돈된 집과 같은 위대한 침묵이 군림한다"고 했다. 침묵의 경험은 소설 '어린왕자'의 배경이 됐다. 렘브란트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도 여백과 시선을 활용해 침묵의 미학을 이끌어낸다.
침묵은 내면을 넘어 사회적인 관계에서도 이점을 지닌다. '말'은 숱한 실수와 구설수를 낳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날 '가만히 있으면 50점이라도 받지' 등의 얘기가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프랑스 가톨릭 사제인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는 "입을 다무는 방법을 배우기 전에는 제대로 말할 줄도 모른다"고 했고, 들라크루아는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이길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침묵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침묵은 저항하는 이들의 입을 막는 부당한 도구로 퇴색되기도 한다. 하지만 소리가 소음이 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침묵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가치다.
◇침묵의 예술=알랭 코르뱅 지음. 문신원 옮김. 북라이프 펴냄. 224쪽/1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