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의 '초충도: 수박과 들쥐'와 정선 '서과투서도'에는 모두 수박과 그 수박을 갉아 먹는 쥐가 등장한다. 시인 유종인은 그림에서 수박의 표정을 읽어낸다.
"수박의 표정은 자신의 것을 훔치고 파먹는 것들에게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오히려 희미한 미소마저 드리우는 신사임당의 수박은 어딘가 제 몸을 내어주는 은밀한 기쁨이 서린 듯하고 정선의 수박도 제 아랫도리를 파먹히는 와중에도 모종의 흐뭇한 표정마저 감돈다."(101쪽)
그는 신사임당이 쥐들에게 파먹히는 수박을 해학적으로 그려 마치 살아있는 듯한 인상을 줬다면 정선의 그림은 거대한 먹을거리를 발견한 쥐들의 자태에 더 주안점을 뒀다고 분석한다.
시인 유종인은 그만의 감수성으로 조선의 그림을 풀어낸다. 책 '조선의 그림과 마음의 앙상블'은 신윤복, 김홍도, 최북, 안견, 정선, 김정희 등 당대 화가들의 작품 80여 점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설명한다. 일반인들은 잘 알아듣기도 어려운 거창한 감상법이나 화풍, 사조 등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일단 눈에 보이는 대로 쉽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공감대를 높였다.
그는 작품을 삶과 맞닿아 있는 15가지 주제로 나눴다. 당대 풍속도에서 나타난 연애, 사군자를 그리고 즐기던 문인의 기개, 자연이 주는 향과 맛, 영모화에 반영된 애완동물, 꿈과 현실, 죽음과 삶 등 시대를 초월한 주제들로 작품을 분류해 독자와의 거리를 좁힌다.
서양의 그림보다 오히려 조선의 그림이 낯선 이들에게 시인의 글은 친절한 안내서 역할을 한다. 그는 "그림과의 소슬한 대화"를 나눴다고 말한다. 시인의 글을 따라 옛 그림에 담겨있는 여유와 자연, 풍류와 품격 등을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 조선의 그림과 마음의 앙상블=유종인 지음. 나남 펴냄. 342쪽/2만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