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평론가가 조르조 바사리다. 1511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바사리는 화가와 건축가로 활동했지만, 동시대 천재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대신 ‘르네상스 미술’의 전문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가 집약한 르네상스 미술사는 세계적으로도 귀중한 자료로 쓰인다. 국내에도 소개됐지만, 절판되면서 잊히는 듯했다. 이근배 조선의대 교수(1914~2007)가 18년간 번역에 힘을 기울여 낸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의 복간본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이 한길사에서 나왔다.
모두 6권으로 3896쪽에 이른다. 33년 전 발간된 원본의 일부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르네상스 미술 전공자인 고종희 한양여대 교수의 해설을 덧붙이고 도판을 2배 이상 넣었다.
최근 출간 간담회에서 고 교수는 “바사리가 이 책을 쓸 때 모든 자료를 망라했고 등장인물을 직접 만나고 작품을 검증한 본격적인 미술서”라며 “무엇보다 인문학적으로 감동하는 글귀가 많다”고 설명했다.
재출간이지만, 해설을 넣은 최초의 완역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바사리는 르네상스 예술가 200여 명의 삶과 작품을 이 책에 녹였다. 르네상스 미술 전문가들도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3대 거장에만 주목할 만큼 사료 분석이 불완전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책의 가치는 4000쪽 가까운 물리적 무게보다 훨씬 더 무거워 보인다.
고 교수는 “르네상스와 고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이 책에서 처음”이라며 “천재 르네상스 미술가들에 관해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많이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바사리는 미켈란젤로의 제자였지만, 그의 천재적 능력에 못 미치자 “우리 세대는 더 이상 미켈란젤로처럼 완벽한 상태가 될 수 없다. 그러니 모방하자. 이 책이 그런 것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며 ‘매너리즘 작가’로서 충실했다는 사실도 고 교수는 전했다.
바사리는 자신의 현실적 능력도 인정했지만, 무엇보다 미술을 보는 개념도 제대로 이해했다. 완벽하지 못한 자연을 예술로 완벽하게 만드는 3인의 대표 작가를 향해 사실로 표현되는 객관성보다 추상으로 표현되는 주관성이 우위에 있다는 주장도 펴 미술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놓았다.
미켈란젤로가 처음에 사실적으로 그리다 나중에 9등신, 10등신처럼 사실에 벗어나는 규범을 새로 만들어내고, 다빈치가 미완성 작품으로 구상이나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모습 모두 미술이 어떻게 표현되고 해석돼야 하는지 알려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바사리 못지않게 이를 번역한 이근배 선생에 대한 열정도 빼놓을 수 없다. 광복 후 밀라노대와 하버드대에서 연구하던 시기, 이 책의 저본을 저작권 문제로 매주 낱장으로 구해 밤낮으로 번역한 일화도 유명하다.
책은 12세기 인물인 조반니 치마부에를 시작으로 그의 제자인 '르네상스 회화 선구자' 조토 디 본도네를 거쳐 ‘천재’로 불린 레오나르도 다빈치, '신의 경지'로 추앙받았던 미켈란젤로까지 회화, 건축, 조각에서 명성을 떨친 거장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끌고 간다.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조르조 바사리 지음. 이근배 옮김. 한길사 펴냄. 3896쪽/6권 세트 27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