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가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에 '한류'와 '치맥' 등 한국어에서 유래한 26개 단어를 추가했다. 단어만 등재한 게 아니다. 홈페이지에 'Daebak!'(대박)으로 시작하는 제목의 관련글까지 게시했다. 옥스퍼드는 이번 결정을 두고 "한류 현상에 기인한다"고 했다. 한국의 문화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한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는 취미 생활의 하나가 됐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에 열광하는 외국인들은 '오빠'와 '언니' 등 한국어에 익숙하다. 봉준호 감독이 말한 '1인치 자막의 장벽'도 무너지고 있다.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학당은 대기자로 넘친다. 베트남은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선정했다. 한국어와 한글의 달라진 위상이다.
7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한국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남한과 북한을 합해 7730만명(14위)이다. 제2언어를 포함할 경우 한국어 사용 인구는 7940만명(22위)이다. 추가된 인원은 재외동포 등이다. 한국어는 제2언어의 사용 인구가 가장 적은 언어 중 하나다. 하지만 '한류'라는 무기를 장착한 뒤 상황이 달라졌다. 제2언어로 사용하지 않지만, 한국어를 아는 외국인이 늘었다.
정부는 해외 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을 내년에 36개 추가한다. 올해를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는 세종학당은 82개국의 234개다. 2017년까지만 해도 171개에 그쳤던 세종학당의 숫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그만큼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해영 세종학당재단 이사장은 "세종학당을 세워달라는 국가와 도시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해외 초·중등학교의 한국어반도 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39개국 1669개 학교에서 한국어반이 운영 중이다. 한국어반의 학생은 15만9864명이다. 지난해에 과테말라, 덴마크, 라트비아, 르완다,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 체코, 터키, 라오스 등 9개국에서 한국어반이 신설됐다. 교육부는 내년에 해외 초·중등학교의 한국어반을 45개국 20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한국어 열풍의 비결은 한류다. K팝을 기반으로 전 세계적 팬덤이 형성되면서 한국어를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이 증가했다. '오빠'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팬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옥스퍼드도 'oppa'(오빠)를 사전에 추가하면서 "오빠는 유명 배우나 가수 등 남한의 매력적인 남자를 언급할 때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로 옥스퍼드는 'hallyu'(한류), 'K-drama'(K-드라마) 'unni'(언니), 'noona'(누나) 등의 단어를 새롭게 등재했다. 'bulgogi'(불고기), 'galbi'(갈비), 'japchae'(잡채), 'kimbap'(김밥) 등 음식과 관련한 단어도 다수 포함했다. 옥스퍼드는 'chimaek'(치맥), 'mukbang'(먹방)까지 그들의 사전에 담았다. 그들이 언급한대로 'K-업데이트'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한국어의 해외 확산의 일등 공신 중 한명으로 BTS를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BTS가 세계적인 락밴드 콜드플레이와 선보인 노래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는 최근 미국 빌보드 차트 '핫100' 정상에 올랐다. 이 곡에는 '어둠이 내겐 더 편했었지 길어진 그림자 속에서' 등의 한국어가 등장한다. BTS는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유엔총회에서 한국어로 연설하기도 했다.
BTS 소속사인 하이브의 교육 부문 자회사 하이브에듀는 해외 팬들을 위해 지난해 8월 'BTS와 한국어 배우자'(Learn! KOREAN with BTS)라는 제목의 한국어 학습교재를 내놓았다. 이 교재는 지금까지 30여개 국가에서 30만권의 판매고를 올렸다. 영국 셰필드대와 미들베리대, 프랑스 에덱비즈니스스쿨 등 7개국 9개 대학은 해당 교재를 한국어 강좌 정식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BTS의 캐릭터인 타이니탄(TinyTAN)을 활용한 초급용 한국어 학습교재를 출시했다. 하이브에듀는 지난 1일 디지털 싱글 '가나다' 음원을 발표하는 등 한국어 확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어를 접한 외국인들은 한글의 과학적이고 쉬운 체계에 관심을 보인다. 유네스코는 1989년 '세종대왕 문해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제정했다. 문맹퇴치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세종대왕 문해상은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공자 문해상'과 함께 시상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시상식에서 중국 전통문화공연과 관련 학술대회까지 함께 개최한다. 한국은 주빈국이지만 예산 등의 이유로 시상식 참석에 머물고 있다.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은 "한글과 한국어 자체가 한류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오징어게임 등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 것 역시 한국어와 한글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의 힘이 전달됐기 때문"이라며 "한글을 독학해 K팝 가사를 외워 부르는 한류팬이 많다는 점에서 한국어를 한류 콘텐츠로 접목시키기 위한 구상을 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