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릴린 먼로의 재발견…내 삶이 때론 무의미해도 귀중할 수 있어"

김고금평 에디터
2024.12.16 05:57

[인터뷰] 26일~1월5일 과학연극 '사랑의 상대성 이론' 주연 지주연…아인슈타인과의 하룻밤 '팩션'

서울대 '얼짱' 출신 배우 지주연. /사진제공=디어이엔티

아무리 유명한 스타라도 그 안에 숨길 수 없는 슬픔이 도사릴 수 있고, 무명의 딱지를 달고 살아도 단단한 삶의 결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네가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의 차이는 우리가 삶을 꾸리는 내내 피할 수 없는 '상대성 이론'의 그림자다. 배우 지주연(41)이 올해 초 매릴린 먼로를 '재해석'하게 된 것도 어쩌면 그런 과학 이론의 현실 응용 편이었을지 모른다.

"원래 고전 영화 보는 걸 좋아해요. 할리우드를 빛낸 여배우 중 올리비아 핫세나 오드리 헵번을 늘 으뜸으로 꼽았죠. 매릴린 먼로는 처음부터 약간 연기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데, 올해 초 그의 작품 10개를 만나면서 이 선입견이 와르르 무너졌어요."

그 섬세한 연기력의 먼로를 '상대적으로' 재인식한 뒤 꾸며진 스타 뒤에 숨은 내면의 본질과 간과할 수 없는 매력도 찬찬히 훑을 수 있었다.

우연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마침 먼로의 이야기가 담긴 연극 과학연극 한 편이 '그'에게 다가왔다. 오는 26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한국과학기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하이코미디 연극 '사랑의 상대성 이론'(원제 : Insignificance)이 그 주인공.

먼로의 유품에서 아인슈타인의 친필 사인 사진이 발견됐다는 '사실'에 '만약 두 사람이 뉴욕의 호텔방에서 만났다면?'이라는 '가정'을 합한 팩션(팩트와 픽션의 합성어,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스토리)으로, 먼로의 아내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까지 합류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다.

1982년 영국에서 초연된 이 연극은 1985년 영화로도 제작돼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후보에도 올랐다. 같은 시대를 함께한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배우 매릴린 먼로가 1953년 뉴욕의 한 호텔방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는 스토리만으로도 눈길을 끌 법하다.

지주연은 26일부터 열리는 이색 과학연극 '사랑의 상대성 이론'에서 매릴린 먼로 역을 맡아 아인슈타인과 상대성 이론에 대해 흥미로운 대화를 이어간다. /사진제공=디어이엔티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것이지만, 그를 찾아간 먼로가 멋지고 기발한 비유로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며 되레 아인슈타인을 감동시키죠. 머리가 아닌 직관적으로 물품을 가지고 설명하는데, 유머와 묘사가 교차하는 '상대성 이론'의 장면이 연극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예요."

아무리 단순화해도 천재 과학자의 이론이 어렵다 보니, 이론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그에겐 커다란 숙제였다. 서울대 '얼짱' 출신이라는 그의 배경은 한편으론 난해한 이론을 가장 쉽게 전달해야 하는 '1타 강사' 같은 이미지로, 다른 한편으론 과학자를 친구로 만들기 위해 관능적인 매력을 뿜어야 하는 섹시미의 대명사로 사용됐다. 지주연은 "먼로의 혼재된 캐릭터를 습득할수록 내면의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연극을 접하면서 가장 머릿속을 휘저은 의문부호는 먼로는 '왜 아인슈타인을 찾아갔을까'였어요. 먼로의 인생 자체가 불안과 결핍으로 구성되다 보니, 유명 야구선수와 결혼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 도사리는 자아에 대한 혼란을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을 거예요. 우주를 연구하는 아인슈타인을 보고 근원적인 존재나 본질,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내적 고독과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먼로가 상대하는 3명의 남자도 모두 '상대성 이론'과 무관치 않다. 조 디마지오(박재민)와는 결혼했지만 갈등과 불안의 지점에 서 있고, 아인슈타인(김현균)은 지와 사랑의 이중주를 펼치고, 상원의원 조셉 메카시(염인섭)와는 공산주의 색출에 맞서는 가치 보호자로서 대척한다.

배우를 직업이 아닌 삶 그 자체로 여기는 태도를 뒤늦게 깨달았다는 지주연. 그는 "전보다 더 너그럽고 포용력있게 자신을 수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사진제공=디어이엔티

지주연은 "나도 먼로랑 비슷한 복잡한 사람이며 상대적 해석의 다양한 대상자"라고 했다. 극중 아인슈타인은 "우리는 작을 수 있고 외로울 수 있지만, 하찮을 수는 없다. 그게 바로 기적"이라고 하는데, 지주연은 "내 삶이 때론 무의미할 수 있지만, 귀중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물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원제(insignificance)의 뜻이 '무의미'인 것도 아무리 유명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날 수 있고 해답을 찾으러 갔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일 수 있는 셈이죠."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그가 느낀 '상대성 이론'은 예술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인식한 깨달음이다. "20대 후반 늦깎이로 데뷔했을 때, 한 연기자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는 30세가 되기 전에 미니시리즈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아이 같아.' 지금 돌이켜보니, 제가 얼마나 조바심을 냈는지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운이 좋아서 KBS 공채 탤런트가 됐고 공부 잘해서 서울대에 가고, '얼짱' 소리 듣고 하다 보니, 객기와 야욕이 앞섰고 오로지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 예술을 이용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더라고요. 제 안의 '인물'을 잘 뛰어놀게 하려면 자신을 더 너그럽고 융통성 있고 포용력 넓게 수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그간 '직업'으로서 인식했던 배우의 길이 '삶'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였다. "배우가 직업일 땐 수단일 뿐이지만, 삶일 땐 목적이 되더라고요. 자신의 몸을 도구로 쓰는 수많은 예술가들을 보면서 제 여과지에 걸러진 색깔이 무엇일지 매일 준비하는 삶이야말로 예술의 길에 비로소 들어설 자격을 갖춘 것 같았어요."

KBS '당신만이 내사랑'에서 치명적인 악녀 역할로 눈도장을 찍은 이후 각종 드라마와 연극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온 지주연은 최근 BBS 불교방송 '문화공감, 상상' DJ로도 활약하고 있다. 보폭 큰 행보는 아니지만, 하루하루 내딛는 그 작고 소중한 발걸음이 '예술가의 삶'으로서의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BBS 불교방송에서 '문화공감, 상상' 프로그램 MC도 맡은 지주연은 "하루하루 한발짝 조금씩 전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제공=디어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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