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다림입니다. 쉽게 찍으려고 하면 사진이 잘 안 나오더군요."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의 전시공간 '피크닉'에서 만난 박용만 재단법인 '같이 걷는 길' 이사장(사진)은 사진촬영 노하우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한 장을 찍기 위해 1시간 넘게 기다리는 일도 허다하지만 그가 원하는 '사람의 따뜻함'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다림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연출이나 개입 없이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전 두산그룹·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박 이사장은 40년 이상 카메라를 들고 전세계 이곳저곳을 누볐다. 굵직한 경영성과를 거둔 기업인이지만 어느새 셔터를 누르는 모습에 더 익숙해졌다. 71세에 연 첫 사진전 'HUMAN MOMENT'(휴먼 모먼트)는 하루 600명 넘는 관람객이 방문하는 인기전시가 됐다.
그는 "기업인 박용만보다는 사진가 박용만으로 기억해주면 좋겠다"며 "기업인이 찍었다면 뻔할 수 있는 사진이지만 사진가의 작품이라면 (관람객들이 받는) 인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날 사진전의 도슨트(해설사)로 나선 그는 관람에 필요한 것은 '머리가 아닌 눈'이라고 강조했다. 해설 없이 사진이 주는 인상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박 이사장은 "소개글도 적고 작품이 찍힌 장소나 시간에 대한 설명도 없다"며 "기록형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해석으로 감상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전시에는 여러 나라의 다양한 모습이 담겼다. 우리나라와 수교하기 이전 중국의 모습과 파리공원 벤치에 앉은 노부부의 얼굴, 사진 찍는 자신을 바라보는 홍콩 할머니 등 다채로운 사진이 매력적이다. 그의 작품 중 첫 번째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사진인 가수 양희은의 데뷔 35주년 기념앨범 재킷도 있다. 부인과 두 아들의 일상 모습이 담긴 사진 역시 눈에 띈다. 80여점의 작품이 펼쳐진 전시관 4개층 중 인상적인 곳은 4층이다. 온통 흑백사진으로 점철됐다. 그는 "화려한 서울의 모습 뒤에 가려진 현실도 생각해 보자는 의미"라고 했다.
박 이사장은 뒤늦게나마 자신의 사진이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게 돼 기쁘다고 했다. 그는 "보는 사람들이 따뜻함을 느꼈으면 좋겠다"며 "다음엔 테마와 (사진) 장수가 정해진 사진전을 해보고 싶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환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