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주방은 더이상 전쟁터가 아닙니다. 이제는 연구소입니다."
40년 넘게 롯데호텔의 조리현장을 지켜온 김송기 롯데호텔앤리조트 상무(조리R&D실장·사진)는 조리환경의 변화를 이렇게 단언했다. 1982년 22세의 나이로 롯데호텔에 최연소 입사한 김 상무는 현재 대한민국 제11대 조리명장이자 호텔 조리개발의 중심인 '조리R&D(연구·개발)실'을 총괄한다. '성실함'과 '꾸준함'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온 그는 지금도 조리사라는 직업의 무게를 묵직하게 마주하고 있다.
그는 한식의 세계화를 언급하며 단순히 김치나 불고기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식이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건강'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발효의 미학'과 스토리텔링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나 '치맥'(치킨+맥주)처럼 K콘텐츠와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방식이 진짜 '세계화의 길'이라는 설명이다.
호텔 셰프의 역할도 시대와 함께 변한다고 진단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던 조리사가 이제는 '기획자'이자 '콘텐츠제작자'가 됐다는 것이다. 주방 역시 달라졌다. 과거에는 뜨거운 불 속에서 '감'(感)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콤비오븐, 수비드 같은 정밀한 장비를 활용하는 실험실에 가까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는 "현대 주방은 연구소에 가깝다. 음식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인식과 흐름 속에 2023년 김 상무는 롯데호텔앤리조트 조리전문 조직인 '조리R&D실' 출범을 주도했다. 수십 년간 체득한 현장 노하우를 바탕으로 메뉴의 표준화와 PB(자체브랜드) 상품개발에 나섰고 그 첫 결과물이 롯데호텔 배추김치와 김치찌개 HMR(가정간편식)다.
그는 경쟁력을 위해 '기본'으로 돌아갔다. 답은 '재료'였다. 강원 영월·전남 해남의 고랭지배추, 경북 영양산 고춧가루, 일반 새우젓보다 5~6배 비싼 고급 육젓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단맛을 위해 감로잎과 토마토를 활용, 인공감미료 없이 깊고 자연스러운 맛을 구현했다. '좋은 재료에서 좋은 맛이 나온다'는 요리의 본질을 과학과 데이터로 입증해낸 셈이다.
김 상무는 "그저 '성실하고 꾸준히 일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며 "특별히 화려하진 않았지만 늘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의 작고 조용한 꿈은 아직 '설계' 중이다. "은퇴 후 좋은 재료로 좋은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과 소통하는 소박한 레스토랑을 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