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한 달을 앞둔 'K축구 혁신위원회'가 암초를 만났다. 축구계가 주도하는 신속한 고강도 개혁을 약속했지만 축구계의 반발과 절차 미비 등 안팎의 잡음에 시달리며 자칫 혁신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 축구계에 따르면 K축구 혁신위는 오는 4일 비대면 회의를 열고 축구협회 선거제 개편 등 혁신안을 논의한다. 지난달 6일 출범한 이후 5번째 회의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박지성과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이영표·박주호 등 축구 인사가 위원으로 나섰다. 당초 위원장으로 거론되던 최휘영 문화체육부 장관은 위원으로 물러났다. 정부 개입을 줄이고 축구계가 자정의 노력을 보이겠다는 취지다.
정작 축구계 곳곳에서 반발이 나온다. 서강일 전북특별자치도축구협회장, 백현식 부산축구협회장, 박성완 충남축구협회장 등 지역 축구 인사가 줄줄이 혁신위 행정에 반대 입장을 냈다. 박지성 위원장을 겨냥해 '인생을 얼마나 안다고 혁신위를 하느냐'는 과격한 발언도 쏟아졌다. 한 축구단체 인사는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개혁 반대파'가 집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혁신위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위 내부 문제도 있다. 이때까지 4차례의 회의에서 단 한 줄의 회의록도 작성하지 않았다. 박지성 위원장이 "구체적인 발언 내용이 공개되면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해명했지만, 혁신위의 출범 취지 자체가 축구협회 '밀실 행정'의 개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문이 남는다. 축구협회조차도 2년 전 홍명보 대표팀 감독 선임 당시 전력강화위 회의록을 남겨 놓았다.
구체적인 방안 발표도 서둘러야 한다. 회장 선출 방식을 300여명의 선거인단이 뽑는 간선제에서 1만여명 이상이 참여하는 직선제로 바꾸겠다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1달째 방식과 시기 등을 결정하지 못했다. 실제 선거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대의원 총회도 넘어야 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현재 축구협회 핵심 인사들이다. 기성 축구계의 반발을 고려하면 쉽게 넘기 어려워 보이는 대목이다.
지난달 30일 열린 '맹탕 청문회'도 이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구체적인 대안은 물론 책임을 질 명확한 '표적'마저 없으니 월드컵 성적 등 자극적인 이슈에만 치중한 채 축구 개혁 방안을 들여다볼 능력도 이유도 없다는 평가다. 개혁을 부르짖던 축구계 인사들마저 줄줄이 청문회에 불참했다. 박지성, 이영표, 박주호 등 혁신위의 주요 구성원들 역시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
혁신위는 가능한 한 빨리 구체화된 방안을 내놓겠다고 설명했다. 선거제 개편의 근간이 되는 대한체육회 규정 개정을 이달 중으로 마무리하고 보다 많은 축구인의 의견을 혁신위 운영에 반영하겠다는 목표다. 한국 축구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유소년 축구 등 중장기 육성 세부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다.
축구계 관계자는 "지난해 선거에서 선거인단 192명 중 156명이 정몽규 전 회장을 지지했다는 점은 기성 축구계의 인식을 보여준다"며 "혁신위 자체는 국민적 공감을 얻고 있지만 축구계 곳곳에 장애물이 있는 만큼 '핀 포인트'로 메스를 들이대야 혁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