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중개사의 중개보수를 상한요율(법에서 정한 상한율 이하에서 협의)에서 고정요율(법에서 정한 수수료율만 적용)로 바꾸는 건 "경쟁제한성이 있는 담합"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논란이 일고 있는 부동산 중개수수료율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상한요율을 고정요율로 변경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고 있는 서울과 경기를 비롯해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9일 기획재정부 등 관련부처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경기도의회가 답변을 요청한 '경기도 부동산 중개보수 조례(고정요율)에 대한 질의'에 대해 "부동산중개사의 중개보수를 상한요율에서 고정요율로 수정한 조례 수정결의안이 경쟁제한성이 있다"고 회신했다.
앞서 경기도의회는 지난달 중개보수를 기존 조례로 정한 상한요율에서 고정요율로 수정한 의결안(매매가 6억~9억원 '0.5% 이하'와 임대차 3억~6억원 '0.4% 이하'를 각각 '0.5%'와 '0.4%'로 바꿔 고정요율제를 적용)을 상임위원회(도시환경위원회)에 상정, 통과시켰다.
하지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고정요율은 반서민적이다"며 반발이 거세지자 본회의 상정을 보류했다. 정부 관계자는 "본회의 상정이 무산되자 경기도의회에서 수정결의안이 공정경쟁 제한 및 소비자권익을 침해하는 등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공정위에 물었다"며 "중개보수를 고정요율로 단일화할 경우 가격경쟁이 완전히 없어져 담합의 효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회신 내용을 보면 공정위는 부동산 중개보수의 정상화를 위해 시장개입이 불가피하더라도 가격 규제는 시장경쟁원리에 배치되므로 이를 최소화하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또 중개대상물의 종류와 특성, 중개 난이도, 서비스의 질, 거래량 등에 따라 가격경쟁의 본질적인 기능이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공정위가 이같이 판단하는 가장 큰 근거는 고정요율제 전환 시 소비자의 수수료 협의권이 없어져 지금보다 서민들에게 불리한 조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매매가 6억원짜리 아파트 거래에서 상한요율을 적용할 경우 '0.5%이하(국토교통부 개선안)'에서 협의가 가능하지만, 고정요율에선 0.5%(고정)를 적용한 300만원을 내야한다. 특히 주택의 고정요율제 전환은 주거용 오피스텔을 상한요율제로 하는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2015년 1월6일 개정·시행)과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공정위는 지자체가 상한요율을 고정요율로 바꾸는 등 법령 개정 시 공정거래법 제63조(경쟁제한적인 법령 제정의 협의 등)에 따라 개선을 권고할 방침이다. 공정위 권고가 법적 효력은 없지만, 만일 부동산중개 수수료율이 문제가 됐을 경우 공정위 의견에 따른 유권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례가 최종적으로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이런 이유로 빠르면 이번주 본회의를 열 계획인 경기도의회를 비롯해 각 지자체 의회별로 공정위 입장을 반영해 수정의결안(고정요율)을 철회하고 정부 권고안(상한요율)대로 정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대해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기존 상한요율로는 합리적인 거래가 이뤄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각 거래마다 수수료율이 달라 분쟁이 끊이지 않는 등 중개업소마다 애로사항이 많다는거다. 협회 관계자는 "기존 상한요율에서는 가격협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분쟁만 늘고 있다"며 "오히려 실제 시장상황을 감안해 운영되는 고정요율이 서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수정의결안대로 본회의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중개업자간 가격경쟁을 봉쇄하고 서비스 등의 경쟁만 허용하는 것은 소비자가 중개보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고 중개업자를 선택할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며 "고정요율제는 가격경쟁을 배제하고 소비자이익을 제한하는 등 경쟁제한성이 있기 때문에 상한요율제보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1월 '부동산 중개보수체계' 개선안을 내놓고 각 지자체에 통보했다. 지자체가 조례로 정하고 있는 현행 부동산 중개보수 체계가 2000년에 마련된 탓에 그동안 크게 오른 주택가격과 전세가격을 반영하지 못하는 등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키고 중개업소와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토부의 중개수수료 개선안은 매매가격 6억~9억원 주택의 경우 중개 수수료 요율을 현행 '0.9% 이하 협의'에서 '0.5% 이하'로 낮추고, 임대차 3억~6억원의 경우 '0.8% 이하 협의'에서 '0.4% 이하'로 낮추는 게 핵심이다. 매매가 6억원·전세금 3억원 이상의 고가주택이 늘어난 현실에 맞춰 수수료 체계를 개편해 서민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 권고안은 지방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방의회가 정부 권고안 대신 "부동산 침체와 전세가격 상승 책임을 공인중개사에게 떠넘긴다"는 공인중개사 업계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현재까지 권고안 심의에 나선 지방의회는 서울시, 경기도, 세종시, 충북도, 경남도, 강원도 등 6곳이지만 이 가운데 관련 조례를 통과시킨 곳은 고가주택이 많지 않은 강원도 의회 단 1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