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이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기존의 노력과 방식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바탕으로 수출위기 대응에 KOTRA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
김재홍 KOTRA 사장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답답하다” “안타깝다”는 말 끝에는 긴 한숨이 마치 꼬리표처럼 따라 나왔다. 공직생활 31년 내내 산업·무역 정책을 맡아오다 지난해부터 ‘수출 야전사령관’격인 KOTRA 사장으로 기업들과 함께 수출 전선을 맨 몸으로 누비고 있는 그의 표정에서 예상보다 심각한 수출 현장의 분위기가 그대로 읽혔다.
수출은 지난달에도 1년 전보다 12.2% 줄어 역대 최장기인 14개월 연속 감소했다. 문제는 반전의 계기가 제대로 보이지 않고 상당 기간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김 사장은 “수출은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어서 자체적으로 타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2일 취임한 김 사장은 그 동안 해외 진출 기회를 찾기 위해 130여일을 해외에서 보냈다. 사흘 중 하루는 해외에 있었다는 얘기다. 거리로 치면 지구를 약 8바퀴 돌았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KOTRA는 올해 조직·인력·예산 개편을 통해 수출 총력전에 나선다. 전투로 치면 ‘백병전’에 나서는 셈인데 김 사장이 선봉에 선다.
각오도 새롭다. 김 사장은 “직접 대책반장이 돼 가용한 모든 자원을 수출 부진 타개에 투입할 것”이라며 “‘물러서면 죽는다’는 각오로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기업화, 수출 시장 및 품목 다변화 등 수출 구조 개선에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취재기자와 김 사장은 지난 1일 수출 부진의 돌파구로 주목받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인터뷰를 위해 만났고, 지난 8일 다시 서울 염곡동 KOTRA 본사에서 대담을 했다. 그로부터 수출 부진의 원인과 극복 방안에 대해 들어 봤다.
-지난해 1월 취임한 지 1년여가 지났다. 그간의 소회는.
▶취임 이후 수출 부진 타개를 위해 무역현장을 바쁘게 뛰어 다녔다. 1대1 상담회, 한국상품전 등 현장을 챙기기 위해 지난해 1/3을 해외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2011년 이후 4년간 유지해 온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지 못했다. 무역투자 진흥 기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지난해 수출 부진의 핵심원인은 무엇인가.
▶수출이 구조적 한계에 부딪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수출은 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13대 주력품목 의존도가 79%, 중국 등 신흥시장 의존도가 58%다. 수출 주체에서는 여전히 대기업 의존도가 크다. 기형적 모습인데 획기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올해도 쇼크라고 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 어떻게 전망하는가.
▶지난해 수출액이 1년 내내 마이너스였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올해는 내용 면에서 더 회복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북핵 문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문제 등 지정학적 변수까지 튀어 나왔다. 자칫 당초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떤 전략을 갖고 있나.
▶근시안적 대책은 이제 효과를 보기 힘들다. 구조적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품목 다변화가 중요하다. 한류를 활용해 화장품·친환경 농식품·고급 소비재 분야의 수출을 확대해야 한다. 혁신제품·ICT 융복함·바이오·문화콘텐츠 분야 등 신산업을 새로운 수출 먹거리로 육성하는데도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시장 다변화도 중요할 것 같다.
▶우리 수출 비중이 신흥시장(58%)에 너무 편중돼 있다. 신흥시장은 새로운 기회의 시장이라는 점에서 계속 공략해야 하지만 세계 경기 침체 때 타격을 많이 받는 어려움이 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낮은 선진국 시장 공략을 강화해야 한다. 신흥시장의 경우 이란이나 베트남, 브라질, 미얀마 등 전략시장에 대한 맞춤형 전략을 추진해 기회 요인을 찾아내 대응해야 한다.
-이란 시장에 관심이 높다. 직접 보니 소감이 어떤가.
▶경제제재 해제에 따른 재건 수요 등 이란이 기회의 시장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제재 당시 한국 등 일부 국가가 제한적인 경쟁을 했다. 그러나 제재 해제로 시장이 열리면서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또 불완전한 시장경제 시스템, 스냅백(제재 복원) 가능성 등 불안요인도 있다. 자동차·기계·장비 등 유망한 분야를 중심으로 세밀한 진출 전략을 세워야 우리 기업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지난해 유일하게 베트남 시장은 수출이 늘었다. 어떻게 보나.
▶베트남은 삼성전자 등 생산기지가 있어 중간재 수출이 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세계 공급사슬에서 중국이 했던 역할이 점차 베트남으로 넘어가고 있다. 특히 FTA(자유무역협정) 허브국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에게 가장 큰 부담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인데 베트남은 TPP의 원체결국이다. 우리 기업들이 공급사슬에 베트남을 활용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베트남은 소득수준 향상으로 소비시장 역시 급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10만 양기론’을 강조한다.
▶수출 부진 속에서 그나마 다행인 점이 총 수출액 중 중소·중견기업 비중이 2014년 33.8%에서 지난해 35.8%로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얘기하면 여전히 65% 가량은 대기업이다. 독일은 총 수출대비 중소기업 비중이 70%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수출하는 중소·중견기업 수가 전체 340만개 중 3% 미만이다. 2017년까지 수출 중소·중견기업 1만개를 육성해 총 10만개로 늘리는 게 목표인데, KOTRA가 지난해 550개를 육성했다. 올해는 정부 총 목표(5000개)의 절반가량인 2240개가 목표다. 올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수출 전문위원을 105명 추가로 뽑는 등 맞춤형 밀착지원 사업으로 수출 중소·중견기업 육성에 공을 들일 계획이다.
-수출 비상대책반장을 자임했다. 비장감이 느껴진다.
▶지난해까지 부사장이 맡고 있던 수출비상대책반장을 올해부터 직접 맡아 수출 부진 타개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검토·수립하고 있다. 기존의 방식과 노력만으로는 국면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다. 조직·인력·예산 등 KOTRA의 모든 것을 수출 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춰 재편할 계획이다. 모든 역량을 동원해 기업을 도와 수출 부진을 극복해 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