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공약·엉터리예측, 나라 망하는 지름길"

세종=정진우 기자, 정혜윤 기자
2016.04.05 03:35

['싱크(Think)' 엿보기]박형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얼마짜리 공약이고 실현가능한지 알아야…"

[편집자주] 대한민국 연구원들은 바쁘다. 굳이 찾지 않아도, 역동적인 사회 분위기 덕분에 연구할 대상과 분야가 많아서다. 우리 사회의 싱크탱크(Think Tank) 역할을 하는 그들은 ‘대한민국의 현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대안을 갖고 있을까. 머니투데이가 ‘싱크 엿보기’를 통해 연구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박형수 조세재정연구원장

# 2018년 가을. 일본 국채 시장이 붕괴되고, 증시가 폭락한다. 일본 은행들의 자금운용에 비상이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 기업인들은 돈을 못 구해 비명을 지르고 멀쩡한 기업들이 하루 아침에 부도가 난다. 20년 동안 쌓여온 일본의 재정파탄은 결국 일본발 금융위기의 방아쇠를 당긴다.

‘일본 최악의 시나리오’란 책의 한 대목이다. 우리나라 조세·재정 분야 ‘싱크탱크’(Think Tank)를 총괄하는 박형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49)이 들려준 이 책 내용은 사뭇 심각했다. 그가 인상 깊게 읽었다는 이 책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일어난 지 3년 뒤에 나왔다. 센카쿠 충돌부터 인구감소까지 일본에서 일어날 수 있는 9가지 가장 나쁜 시나리오를 담았다. 미래에 있을 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자는 게 저자들이 집필한 취지였다.

박 원장은 이 책을 보면서 우리나라를 떠올렸다. 20년 시차를 두고 일본을 닮아가고 있는 까닭이다.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위기 요인들이 감지되고 있고 그래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게 박 원장의 생각이다.

박 원장은 4일 머니투데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시종일관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걱정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게 리스크 관리다”며 “국민들에게 피해를 많이 입히는 경제 이슈들도 재난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컨틴전시 플랜을 세우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든 대표적인 사례는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이 거덜 날 것이란 전망은 나오지만, 제대로 이를 맞을 대응책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것. 그는 “국민연금이 고갈될 시점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에 대한 얘기를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며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어떤 방향으로 갈지 보여줘 국민 모두가 대비토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장은 정부 정책이나 정치권의 공약 역시 마찬가지라 여겼다. 대중적 인기만 좇아서는 안 되고, 그 정책이 실제 어떻게 국민의 삶 속에 흘러 들어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예산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더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재정상황에 맞게 정책이나 공약이 만들어지고, 재정 여력에 맞춰 모든 계획을 짜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 살림이 파탄나고 망하는 지름길이란 게 그의 지론이다.

박 원장은 “아무리 정책이나 공약이 좋아도 얼마짜리인지 또 실현 가능한지를 봐야 하고, 지금 우리나라 재정상황이 어떻고 앞으로 어떻게 된다는 것을 선거 전에 미리 공유해야한다”며 “무책임한 공약을 걸러내고, 미래 예측을 잘 하면 국가 재정도 탄탄해진다”고 역설했다.

박형수 조세재정연구원장

그가 제시한 모범사례는 호주와 네덜란드다. 두 나라는 선거가 있기 전에 현재 재정상황과 5년 후 재정이 어떻게 되는지 자세히 정리해 국민들에게 알렸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예가 있긴 있었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추진한 공약검증이다. 선거때 마다 정당이나 시민단체에서 엉터리 자료를 발표해 국민들이 혼란스러웠던 것을 막고자 했다.

박 전 장관은 당시 예산당국이 공약을 검증하면 문제가 없다고 봤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정치개입이라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실행되진 못했다. 박 원장은 “정책이나 공약이 실현 가능성 있는 것인지 들여다보는 것은 국민들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다”며 “재정조달 계획이 있는지, 얼마짜리 정책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을 세세히 들여다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정부가 예산을 짤 때도 이런 고민이 담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내년도 정부의 예산안 기조가 재정건전성에 맞춰진 것에 대해서는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박 원장은 “예산정책도 전세계적인 추세를 보는 게 중요한데, 2008년 위기 이후 모든 나라가 돈을 많이 풀었고 경기가 좀 살아나는 시점이 되니까 재정건전성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G7 국가 중 일본을 빼고 미국 등 나머지 국가들은 재정수지를 좋게 가져 가려 하는데, 우리도 이제 국가채무비율 자체를 안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정부 정책이 성장률에만 묶이는 건 경계했다. 성장률만 추구하는 정책은 국민의 삶과 동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 원장은 “우리나라 경제정책은 성장률로 귀결되는데, 프레임을 바꿔야한다”며 “성장률 2.9%나 3.1%가 당장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를 얼마 만큼 만들고, 우리 삶의 편익이 얼마나 바뀌는 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통화정책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한국은행 출신인 그는 한은이 스스로 역할을 한정 지어 좁은 테두리 안에 갇힐 필요가 없다고 했다. 통화정책도 경제정책의 한 축이기 때문에, 한은이 좀 더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영국이 경제가 어려워졌을때 통화정책에 대한 프레임을 바꾸고, 구조조정 등 경제 생산성을 높이는 일을 했다”며 “한은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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