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5월 고용동향 발표를 앞두고 통계청이 발칵 뒤집혔다. 그 전날 현대경제연구원(이하 현대연)이 청년체감실업률이 34.2%(2015년 8월 기준)에 달한다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해 통계청의 발표에 소위 물을 탔기 때문이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공식 청년실업률은 8.0%였다.
이에 유경준 통계청장은 기획재정부 기자실까지 찾아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연의 보고서는 자극적이며 신중하지 못한 연구라며 날 선 비판을 가했다.
민간연구소의 연구에 대해 정부가 서면이 아닌 직접 브리핑을 통해 해명하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다. 그것도 국가 통계를 총괄하는 수장이 민간연구소의 연구에 대해 통계의 기본도 안돼 있다며 비난했다는 점에서 유 청장의 행보는 이례적이었다.
이번 갈등의 핵심은 바로 실업률 통계 기준이다. 현대연 측은 알바생과 같은 비자발적 비정규직과 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과 같이 취업준비도 없이 그냥 쉬고 있는 청년들까지 실업자로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 청장은 "취업을 희망하고, 취업이 가능하고 구직활동 조건을 만족했는데도 실업자가 되면 실업자로 정의된다"며 "이미 취업한 사람과 구직의사 없이 그냥 노는 사람까지 실업자로 보는 것은 국제기준에도 안 맞고 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며 반박했다.
사실 통계라는 것은 기준에 따라서 그 결과가 큰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에 기준에 대한 신중하면서도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 더욱이 국가 통계를 관장하는 통계청의 입장에서 국제적인 기준을 지키고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 누구나 동의한다.
하지만 현대연의 보고서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현대연은 통계청의 실업률 통계가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대다수의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를 원하는 반면 상당수가 임시적으로 비정규직에 종사하거나 고시나 공무원 시험 등을 위해 노는 경우가 많음을 지적한다.
특히 비자발적 비정규직 청년의 경우 근로여건이 매우 열악해 더 좋은 직장에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이 대부분이므로 이들까지도 사실상 실업자로 포함해서 청년체감실업 보조지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그럼 고용보조지표를 추가로 도입하자는 현대연의 주장이 유 청장의 지적대로 정말 기본도 안돼 있으며, 단순히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궤변에 불과한 것인가?
비자발적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청년들은 한마디로 처우가 열악한 직장을 어쩔 수없이 택한 취업자들이다. 즉, 이들은 자신이 현재 종사하고 있는 일자리를 자신의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놀 수 없어서, 제대로 된 직장을 찾기까지 돈이 필요해서 일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하지만 유 청장은 이러한 비자발적 비정규직 청년들은 이미 취업을 한 취업자이므로 실업률 통계에 넣는 것은 넌센스라고 주장한다. 즉 정부 입장에서는 45.8만명(2015년 기준)에 달하는 비자발적 비정규직 청년들은 정규직과 다름없는 그냥 취업자인 셈이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고용지원책이 제대로 마련될 여지가 없다.
그냥 쉬고 있는 청년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취업할 의사도 없고, 취업이 가능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실업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연은 그냥 쉬는 청년 인구 역시 경기 변동에 따라 밀접한 연관성을 보이기 때문에 이들을 단순히 직장기피자로 취급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왜 직장을 포기하고 쉬고 있는지, 무슨 이유로 구직활동이나 취업 준비조차 안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인 것이다.
통계청 역시 올해 1월부터 고용보조지표 1,2,3을 매월 고용동향통계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해 지표의 괴리문제를 보완하려고 노력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청년층을 위한 고용보조지표는 따로 발표하지 않는다. 현대연에서 통계청의 고용보조지표3의 기준에 근거하여 추계한 작년 8월 청년실업률은 22.6%에 달한다.
그렇다면 22%는 객관적 수치이고 34%는 허무맹랑한 것인가? 둘 다 청년들이 체감하는 실업률이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청년실업률보다 높고, 구직난에 고통하는 이땅의 청년들이 그만큼 많다는 걸 의미한다.
통계청장의 의견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다만 통계청도 고용보조지표를 발표하듯이 수십만명의 청년들이 비정규직으로 차별받고, 미래의 희망을 갖지 못한 채 취업자체를 포기해버리는 아픔을 이해하자는 말이다.
현대연의 보고서가 다소 과한 추정을 시도했다 할지라도 청년들의 실업문제를 더 면밀히 들여다보자는 의견에 통계청장이 그렇게 발끈해서 비난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공식 청년실업률 지표 이면에 감추어진 수많은 잠재적 실업자들과 더좋은 일자리를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관심을 갖고 최소한 고용보조지표에 청년층을 추가해서 발표하는게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객관성과 정확성이 기본인 통계지표도 중요하지만, 청년들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애정어린 관심도 병행돼야 한다. 이러한 관심과 애정이 결여된 통계지표는 청년들의 실제 삶과 괴리만 낳을 뿐이다.
"뭣이 중한디? 뭣이 중한지도 모름서..."
영화 곡성에 나오는 한 대사가 왠지 청년실업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기성세대를 향한 볼멘소리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