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969년부터 종가세로 정착된 주류 과세체계를 반세기 만에 종량세로 개편하지만 소주는 현행 과세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주를 종량제로 전환할 경우 주세 세수가 연간 1270억원 가량 줄어드는데다, 위스키 등 고가의 수입 주류만 혜택을 볼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3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주최한 '주류 과세체계 개편에 관한 공청회'에서는 주종별 종량세 전환 시나리오가 발표됐다. △맥주만 종량세로 전환하는 방안△맥주와 탁주만 전환하는 방안△모든주종을 종량세로 전환하되 맥주와 막걸리 외 주종은 일정 기간 시행시기를 유예하는 방안 등 3가지다.
현재 주세는 가격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다. 위스키와 고급 와인처럼 고가 주류일수록 세금도 많은 구조다. 반면 종량세는 도수, 양에 비례해 세금을 더 부담하는 제도다.
◇종량세 전환, 소주보다 위스키 혜택=3가지 시나리오 중 어떠한 방안을 선택하더라도 소주는 당분간 종량제 전환 대상에서 빠진다.
다만 주종별 종량세 전환 유예 시나리오를 보면 종량제 도입시 소주 등의 세부담 변화를 추산할 수 있다. 이 시나리오는 ‘희석식 소주의 세부담을 늘리지 않아야 하고 국제 통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 시나리오는 현행 희석식 소주의 주세 납부세액인 리터당 947.52원을 기준으로 21도 이하는 리터당 947.52원, 21도를 초과할 경우 1도 1리터당 45.12원을 적용해 추산했다. 1도 1리터당 45.12원은 실제 출고수량을 기준으로 희석식 소주의 현행 주세 납부세액 수준을 유지하고 21로 나눈 값이다.
희석식 소주는 21도, 증류식 소주는 35도, 위스키 및 브랜디는 40도, 일반증류주는 30도, 리큐르는 21도를 기준으로 세부담 변화를 살펴봤다. 그 결과 희석식 소주는 세부담 변동이 없고 나머지 주종의 경우 세부담이 모두 감소했다.
소주업계 입장에서도 희석식 소주의 세부담은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경쟁자인 위스키 등 다른 고가 증류주의 세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소주만 바꾸면 안되나?"…"WTO 위반"=소주만 별도로 과세체계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소주만 별도로 하려면 상위 개념인 증류주를 통째로 개편해야 한다. 증류주에는 소주뿐만 아니라 위스키도 포함 돼 있다.
현행 종가세 체계에서 위스키는 세금 규모가 크다. 고가 제품이 많다. 종량세로 바뀌면 소주와 반대로 위스키 세금은 떨어진다. 종량세가 자칫 서민의 술 가격은 올리고 고급 양주는 낮출 가능성이 있다.
기재부 방침대로 소주에 붙는 세금을 올리지 않으면서 WTO 규정을 지키려면 위스키에 붙는 세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예컨대 조세연이 제시한 희석식 소주 종량세 부과체계 '리터당 21도= 947.52원'을 기준으로 1도마다 45.12원씩 오르는 구조로 짜면 17도짜리 소주에는 리터당 767.04원이, 40도 위스키에는 리터당 1804.8원이 세금으로 붙는다. 반면 현재는 수입가 1만원짜리 중저가 위스키도 72%(7200원)의 세금이 붙는다.
그렇다고 증류주에서 소주만 따로 떼어 과세체계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이어서다. 앞서 WTO는 1999년 소주에 35%, 위스키에 100% 세율을 적용한 한국의 주세제도가 WTO 협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현재 증류세에 붙는 주세율이 일률적으로 72%인 이유다.
일각에선 정부가 소주 경쟁력 제고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종가세 체계에선 고급 소주일수록 세금 부담도 커 가격 경쟁력이 뒤처져서다. 그동안 수제맥주 업계도 비슷한 이유로 종량세 전환을 요구해왔다.
홍범교 조세연 연구기획실장은 "소주를 포함한 전격적인 종량세 전환은 업계와 소비자에게 혼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면서 "주류업계와 소비자가 적응할 시간을 갖도록 미리 전환계획 시기 등을 발표하고 이에 맞추 점진적으로 종량세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