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차라리 거짓 공약이었더라면

세종=최우영 기자
2021.08.09 04:30

한 IT기업 디자인팀이 기발한 서비스 콘셉트를 발표했다. 혁신적인 서비스지만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지가 불명확했다. 이에 참지 못한 개발자가 디자이너에게 실현 방법을 물어보자 디자이가 답했다. "어떻게 구현할지는 개발팀이 알아서 고민해보셔야죠"

구체적 방법 없이 장밋빛 미래만 외치는 건 쉽다. 실현 방법에 대한 고민도 없으니 말하는 사람은 속 편하다. 실무진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무책임할 따름이다.

대선 후보들의 경제 공약을 바라보는 재정당국의 입장은 IT기업에서 디자인팀을 대하는 개발자와 유사하다. 매년 50조원 넘는 기본소득을 전국민에게 뿌리겠다는 공약, 20세가 될 때 1억원씩 안겨주겠다는 공약은 모두 신선하다.

공약의 재원조달 방식은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기본소득은 토지보유세를 시설하겠다는 방안을 내놨지만 헌법상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얼마를 어떻게 걷을지 아무도 모른다. 오죽하면 같은 당 후보가 "나랏돈 물 쓰듯 하기 대회에 나왔냐"며 비꼴 정도다.

허황된 공약이 대선에 등장하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후보들이 선심성 공약으로 인기글 모아 당선된 뒤 공약을 슬그머니 완화하거나 없던 일로 만드는 일이 잦았다. 공약을 통해 선명성을 드러내 지지세력을 결집시키지만 당선 이후에는 현실에 맞춰 정책을 조정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 공약의 선명성은 정책에 그대로 투영됐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비록 지켜지지 않았지만 5년간 41.6% 오른 최저임금은 내년 9160원에 달한다. 최저임금에 연동된 실업급여 인상이 일자리 대란과 맞물리면서 고용보험기금은 매년 2조원 적자로 돌아섰다. 신규 공급 없이 집값을 잡겠다던 부동산정책은 여러 재개발의 발목을 잡으며 부동산 폭등에 일조했다.

한 재정당국 관계자는 "대선 후보들의 포퓰리즘 공약이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과거 대선 후보들의 허황된 공약을 보면서는 그냥 웃었지만 실제로 이를 실현하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웃고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명하지만 현실성 없는 공약을 앞세운 후보가 당선된다면 당장 '로드맵 창조'를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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