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의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정부가 발표한 주요 정책과제 관련 법안을 여당이 대신 발의하는 이른바 '청부입법'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 입장에선 절차가 상대적으로 단순한 의원 입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일부 정책에 대해선 정부보다 여당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17일 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은 이날 사실상의 정부안으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원자재 가격 변동을 납품단가에 자동 반영하도록 하는 납품단가연동제(이하 연동제)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연동제를 도입하는 내용으로 하도급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해당 개정안을 공정위가 아닌 윤 의원이 발의한 것이다.
정부가 정책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여당이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사례는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 9월 13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나랏빚의 급격한 증가를 막기 위해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선 국가재정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해당 개정안은 정부가 아닌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이 9월 20일 대표 발의했다.
정부의 '조직개편'도 청부입법을 통해 추진 중이다. 정부는 지난 10월 6일 여성가족부 폐지, 국가보훈처의 국가보훈부 격상,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청 신설 등을 골자로 한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선 정부조직법 개정이 필요한데 해당 개정안을 정부가 아닌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국민의힘 원내대표,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장)이 대표 발의했다.
정부는 국정과제에 '공급망 기본법' 제정을 포함했는데 관련한 법안도 정부가 아닌 여당이 발의했다. 지난달 14일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이 대표 발의한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이 그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17일 "류 의원 대표 발의로 지난 14일 공급망 기본법이 발의됐다"는 내용의 보도참고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특정 의원의 법안 발의와 관련해 정부가 보도참고자료를 내는 것은 드문 일이다.
청부입법이 이어지는 이유로는 '속도'가 꼽힌다. 정부가 법안을 발의하려면 입법예고(법제처 제시 기준 소요기간 약 40~60일) → 규제 심사(15~20일) → 법제처 심사(20~30일) → 국무회의 심의(5일), 대통령 재가 및 국회 제출(7~10일) 등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반면 의원 입법의 경우 의원 10명 이상 동의만 있으면 이런 절차를 모두 생략할 수 있어 정부가 청부입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달 6일 정부 조직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이것(조직개편안)을 정부안으로 할 경우 기간이 상당히 길어진다"며 "신속한 추진을 위해 의원 입법 형식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일부 정책에 대해선 여당이 드라이브를 걸고 정부가 뒤쫓아 가는 상황이라 정부가 법안에 발의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례로 연동제의 경우 그동안 공정위는 부작용을 우려해 '자율규제 우선' 원칙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여당이 법제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공정위가 입장을 선회했고 관련 하도급법 개정안도 여당이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