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경제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자산 격차와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소득 격차가 동시에 심화되는 '복합 양극화' 국면에 진입했다는 한국은행 분석이 나왔다. 특히 순자산과 소득이 모두 하위 계층인 청년층 비중이 5년 새 두 배 가까이 늘면서 무주택·청년층의 경제적 위상이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국은행이 11일 발표한 '우리 경제 가계 양극화의 실태와 파급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7년 0.584에서 지난해 0.625로 상승했다. 2012년 0.617에서 2017년까지 하락하던 자산 불평등이 부동산 가격 상승 영향으로 다시 확대된 것이다.
부동산이 고연령층에 집중되면서 세대 간 자산 양극화도 구조화됐다. 청년층에서는 소득을 축적해도 자산 형성 사다리에 올라서기 어려운 계층이 늘고 있다. 저자산·중상위소득 청년층의 상위 자산계층 이동 가능성은 최근 들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 관계자는 "자산 가격 상승 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소득만으로는 자산 형성 사다리에 올라타기가 힘들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득 격차 역시 다시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재분배 정책 효과로 하락세를 이어오던 처분가능소득 기준 소득 지니계수는 2016년 0.353에서 2023년 0.323까지 낮아졌으나 지난해 0.325로 소폭 반등했다. IT 산업 중심의 성과급 확대와 비IT 부문의 성장 둔화로 산업 간 임금 격차가 커진 영향이다.
한은은 AI 확산이 저소득층과 경력 초기 청년층의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소득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AI 노출도가 높은 산업에서는 생성형 AI 출시 이후 청년층 고용은 감소한 반면 50대 고용은 증가하는 '연공 편향적 기술 변화' 현상이 나타났다.
한은 관계자는 "AI 고노출 산업은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인 만큼 고용 수요는 많지만, 숙련 노동 중심으로 채용이 늘고 초기 기술을 가진 인력은 많이 뽑지 않으면서 청년층 고용이 감소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득 격차 확대는 자산 양극화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고자산·AI 수혜 계층은 높은 소득을 바탕으로 자산 축적을 가속화하는 반면 저자산·AI 비수혜 계층은 높은 주거비 부담과 소득 불안정으로 자산 기반이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순자산 5분위와 1분위의 소득 배율도 2023년 이후 큰 폭으로 확대됐다.
특히 복합 양극화의 부담은 청년층에 집중됐다. 순자산과 소득이 모두 1분위인 가구 가운데 20~30대 비중은 2020년 7.9%에서 지난해 15.2%로 급증했다. 반면 유주택 가구의 순자산·소득 분위는 2012년보다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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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양극화가 경제 전반의 생산성과 소비 활력도 떨어뜨린다고 분석했다. 1980~2023년 120개국 자료를 활용한 분석 결과 자산 상위 10%의 보유 비중이 1%포인트 상승하면 2년 후 총요소생산성(TFP)은 0.16%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됐다. 우리나라의 상위 10% 순자산 점유율은 2022년 43.0%에서 지난해 46.1%로 높아졌다.
고령층 자산 집중과 '노노(老老) 상속', 자산 잠김(wealth lock-in) 현상도 생산성 저하 요인으로 지목됐다. 높은 주거비 부담은 소비 여력을 제약하고 결혼·출산을 가로막아 사회적 비용을 키우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은은 기존의 소득 보전 중심 재분배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하고, 주식시장의 안정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해 가계의 자산 형성 채널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자금이 주식·채권 등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 기업 투자로 연결돼야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제언이다.
한은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근로소득을 통한 자산 형성 경로"라며 "청년층이 창업이나 도전적인 생산 활동을 통해 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부동산 외에도 주식시장 등 다양한 자산 형성 채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