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전세계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25% 관세를 본격 시행하면서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우리나라를 직접 대상으로 한 첫 관세 조치인만큼 우리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중요시 하는 알래스카 가스 개발 사업이 우리의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1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날 안덕근 산업부장관은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경제단체, 주요 업종별 협회, 학계 및 지원기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민관합동 미국 관세조치 대응전략 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철강·알루미늄 관세와 다음달 초 예고된 상호관세 등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안 장관은 "4월초 예고된 상호관세 부과 등을 앞두고 대응체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며 "미국측과 고위급 및 실무협의를 밀도있게 진행하는 한편 여타 주요국의 대응동향을 모니터링해 우리 산업계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오는 13~14일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미국 행정부 주요인사를 면담할 예정이다. 지난달 말 이뤄진 한미 장관급 협의에 따른 후속협의 차원이다.
정 본부장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등 정부 고위관계자들을 만나 통상현안 관련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고 한미 공급망 강화 등 경제·통상 협력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주요 이슈 중 하나는 철강 등에 대한 관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 서명한 행정명령에 따라 동부시간 기준 12일 오전 0시1분(한국시간 12일 오후 1시1분)부터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의 관세가 부과된다.
이전에는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에 대한 관세 조치로 우리나라는 간접 영향권에 있었지만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관세가 시행되면서 우리나라도 직접적인 대상에 포함됐다.
기존에 우리나라는 미국에 철강을 수출할 때 연간 263만톤까지만 수출할 수 있는 쿼터제가 적용됐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인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자 우리나라는 관세 대신 쿼터제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인해 쿼터 등 모든 예외조치는 사라지고 일괄적으로 25% 관세가 적용된다.
정부는 한미 실무협의체를 통해 미국측과 지속적으로 소통한다는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변화가 예측불허한 만큼 한번 관세 조치가 시행됐더라도 사후 협상을 통해 조치를 유예하거나 예외 적용을 받는 등의 방법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장관은 지난달 말 미국의 주요 통상당국자들과 만나 △관세 △비관세 △에너지 △조선 △알래스카 가스 개발 등 5개 분야에 대한 실무협의체 개설에 합의했다. 해당 이슈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미국측과 협의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주요 협상 이슈 중 하나인 알래스카 가스 개발이 철강 분야 관세 협상에서 우리나라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알래스카 가스 개발 사업은 알래스카 북단 프루도베이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1300㎞ 길이의 가스관을 통해 앵커리지로 옮긴 뒤 이를 LNG로 전환해 판매하는 프로젝트다. 사업비로 440억달러(64조원) 이상 투입될 것으로 추정된다.
대규모 가스관을 건설하는 사업인 만큼 막대한 양의 철강재가 필요하다. 알래스카 가스라인 개발회사(AGDC)에 따르면 가스관 건설에 필요한 철강재는 약 42만9000톤이다. 미국의 철강회사 생산량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 등 글로벌 철강업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김진범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미국 에너지용 강관 수요 증가에 따라 국내 강관업황 전반의 수혜가 예상된다"며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관련 기대감도 작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미국의 철강·관세 제품과 파생상품에 대한 25% 관세 일괄 부과를 무작정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전세계가 동등하게 관세를 맞는다는 측면에서 경쟁국과의 격차는 없다. 물량과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했던 중국산 제품은 이미 트럼프 1기때부터 미국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 상태다.
그간 한국은 263만톤이라는 물량 쿼터 규제를 받고 있었지만 어찌보면 전세계와 자유경쟁 체제에 돌입한 셈이다. 유정용 강관, 니켈도금강판 등 미국 수요는 있으나 기존 쿼터 제한으로 수출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던 제품은 장벽이 사라지는 셈이다. 관세에 따른 가격 경쟁이 숙제가 될 수 있으나 한국산 제품에 대한 신뢰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변수는 미국 기업의 생산량 증대다. 전세계 관세 폭탄 아래서 현지 기업은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생긴다. 찍어내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공장 증설을 포함해 미국 기업의 시장 변화에 얼마나 대응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볼트·너트, 스프링을 비롯해 범퍼·차체·서스펜션 등 자동차 부품을 포함한 철강·알루미늄 파생상품은 2차 가공 제품으로 앞선 미국의 발표와 달리 모든 제품에 대해 관세가 부과된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당장의 비용 상승에 따른 부담이 현실로 다가온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 실장은 "25% 관세 부과에 따라 단기적 비용 상승 여파를 중소·중견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정부의 지원과 수출 다각화 등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관세에서 자유로웠던 중국산 파생상품이 선점한 미국 시장에 대한 진출의 기회도 있다. 이 실장은 "그간 철강·알루미늄 파생상품 수출이 많았던 중국에 고(高)관세를 부과한다면 상대적으로 우리 기업이 반사이익을 누릴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