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세계무역기구)·FTA(자유무역협정)로 대표되는 '자유무역 시대'. 기업들은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을 찾아 세계로 뻗어갔다.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앞세운 기업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공급망을 만들었다. 세계는 하나의 생산기지였고 기업은 촘촘한 공급망 속에서 최적화를 이뤄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귀환은 이러한 질서를 180도 바꿔놨다.
전조는 있었다. 트럼프 1기 당시 중국에 대한 무역 압박은 이미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었다. 기업들은 중국을 벗어나 멕시코 등지로 눈을 돌렸다.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도 꾀했다. 하지만 그곳도 더는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돌아온 트럼프는 동맹국에도 예외 없이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멕시코에 생산공장을 둔 대기업 주재원은 "트럼프 재취임 이후 관세정책의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멕시코법인 내부에서 공장 철수까지 포함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관세 불확실성은 한국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도 혼란을 겪고 있다.
에릭 가스콘 멕시코 자동차부품협회 국장은 "트럼프 재선 이후 멕시코에 진출한 해외 자동차 회사들의 신규 투자가 사실상 멈춘 상태"라며 "한국은 물론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도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이 불러온 위기감으로 기업들의 움직임은 기민해졌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 3월 미국의 무역적자는 1405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4월 상호관세 조치 발표를 앞두고 기업들이 수출 밀어내기에 나선 영향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선 미국과의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더라도 관세 위협은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가 대체 거래선 발굴 등 적극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수출 피해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손톱 밑 가시와 같은 규제도 정부가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출이 막힌 제품의 국내 유통을 허용하는 한시 조치는 일부 효과를 냈다. 지난 4월 정부는 외국어 표시 수출용 식품에 한해 한글 스티커 부착 후 △조리·가공용 △급식용 △기부용 등으로 국내 유통을 허용했다.
그러나 대체시장으로 주목받는 인도 진출만 하더라도 여전히 난관이 많다. 복잡한 행정 절차와 비효율적 시스템이 걸림돌이다. 통관 분쟁 해소, 절차 간소화, 현지 기관과의 협의 등에서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
박종훈 시노스(자동차 부품업체 시그마의 인도법인) 법인장은 "현지 법인 설립 자금을 송금하려 했지만 인도중앙은행의 5단계 결재 때문에 한 달 넘게 자금이 묶였다"며 "코트라(대한무역진흥공사)에 상황을 알리자 당일 오후 송금이 이뤄졌다. 정부 기관의 개입이 있어야 일이 진행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