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시 대기' 투자자 예탁금 100조+α…자본시장으로 몰리는 자금
-"집보다 주식이 더 낫다"…대형주 학습 효과에 '머니 무브' 흐름
부동산에 묶여 있던 자금이 움직이려는 조짐을 보인다. 주식 시장 호황이 불러온 학습 효과의 결과다. 부동산에서 생산적 금융으로 자금 이동을 유도하는 이재명 정부의 '머니 무브(money move)' 정책 기조와도 맞물린다.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 2일 기준 111조 2965억 3800만원까지 치솟았다. 1년 전(58조2317억200만원)보다 1.9배 늘었다. 이후 증감을 반복하고 있지만 지난달 27일 이후 꾸준히 100조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5일 기준 투자자 예탁금은 104조 8666억 6700만원이다.
투자자 예탁금은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 계좌에 맡겨둔 자금이다. 투자자 예탁금이 늘었다는 건 주식 시장으로 돈이 몰린다는 의미다. 불과 한 달 사이 약 20조원 불어났다.
'머니 무브'의 흐름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해 11월 주택담보대출은 34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5대 시중은행의 1월 말 요구불예금 잔액은 한 달 사이에 22조4705억원 줄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5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머니 무브가 시작됐다"고 공식화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집보다 주식 수익률이 높다"는 학습 효과가 자리한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4일 5371.10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1년 전 같은 날과 비교하면 2.2배로 상승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같은 기간 3.2배로 올라 시가총액 1000조원을 돌파했다. SK하이닉스(4.7배), 현대자동차(2.5배) 주가도 폭등했다.
1년 전 상황은 달랐다. KB부동산에 따르면 2015년 1월부터 2025년 1월까지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4억9283만원에서 12억7503만원으로 2.6배 뛰었다. '부동산 불패'는 흔들리지 않는 공식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첫 거래일의 코스피 지수는 1926.44에서 2398.94로 1.2배 상승하는 데 그쳤다. 코스피지수만 봤을 때 10년 동안 수익률은 20%에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풀린 유동성이 자본시장을 외면하고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최근 1년 동안의 상황은 반대다. 올해 1월과 지난해 1월을 비교할 때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2배 상승했고, 코스피지수는 1.9배 올랐다. 이번 달 들어 격차가 더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코스피지수는 이재명 정부 출범 전인 지난해 6월 2일 2698.97에서 8개월 만에 2배에 육박하는 상승률을 보였다.
부동산에 쏠린 자금을 자본시장 등으로 유인하는 '머니 무브'는 이 대통령이 취임 때부터 강조해온 역점 정책이다. 일각에선 자본시장에서 나온 수익이 다시 '똘똘한 한 채'로 몰리는 이른바 '역(逆) 머니 무브'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는다. 이 대통령이 연일 부동산 문제를 언급하는 것도 이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지로 해석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1년 만에 코스피 지수가 2배가 됐는데 부동산도 이런 적은 없었다"며 "부동산 가격은 시간이 지나면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역 머니 무브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대다수는 자본시장에 남아 기업이 투자할 때 자본 조달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코스피 5000, 대체 투자 기회 열려"
-부동산 정상화 적기, 전임정부 없던 '최초·마지막' 기회인식
"임기 내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목표로 했던 '이재명의 시간'이 '5천피' 조기 달성으로 정권 초기에 열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 억제와 집값 안정을 위해 연일 쏟아내고 있는 강경 메시지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이 내놓은 총평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달 31일 SNS(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부동산 정상화는 5천피(코스피 5000), 계곡 정비보다 훨씬 쉽고 더 중요한 일"이라고 썼다. "'불법계곡 정상화=계곡정비 완료', '불법 부정 판치던 주식시장 정상화=5천피 개막'"이라고도 적었다. 경기도지사 시절 최대 성과로 꼽히는 계곡 불법시설 정비와 정권 초기 코스피 5000 달성보다 '부동산 정상화'가 되레 쉽다는 특유의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이 대통령을 잘 아는 여권 관계자들은 이런 자신감의 근저에는 60%를 넘나드는 높은 국정 지지율과 코스피 5000 조기 달성이란 전대미문의 성과가 자리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해 온 '생산적 금융'을 가능하게 할 여건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부동산이나 가계대출 등 비생산적인 부문에 쏠린 자금을 첨단산업과 벤처기업 등 실물 경제와 성장 동력 분야로 전환하는 '생산적 금융'은 이 대통령의 가장 핵심적인 공약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가계 자산의 80%를 부동산이 차지하는 망국적 구조 해체는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 한 일"이라며 "전인미답의 코스피 5000으로 '머니무브'(부동산→자본시장)가 가능한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라고 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집값 폭등을 막지 못 한 노무현·문재인 정부에는 없던 '무기'가 이재명 정부에 쥐어진 상황"이라며 "이 대통령의 잇단 부동산 메시지가 코스피 5000 달성을 전후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도 "취임 초기 여러 국정 성과로 국민적 지지 기반이 만들어지면서 이 대통령 특유의 뚝심 있는 스타일과 자신감, 역사적 소명의식이 발현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이 직접 꼽은 부동산 정상화가 가능한 3가지 근거에도 '생산적 금융' 전환의 의지가 강하게 묻어난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망국적 부동산투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잡는다"며 △대체투자수단 등장△국민 인식변화 △정부 정책의지 등을 언급했다. 부동산 외에 주식시장이 대체 투자수단으로 등장해 자산구조의 변화가 가능해 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국민인식조사에선 주식이 부동산을 제치고 '국민 재테크 1위'로 등극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달라졌다. 공약이행률 평균 95%"라며 "대통령으로서 빈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코스피 5000 시대 개막으로 생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려선 안 된다는 이 대통령의 '절박함'이 반영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인공지능(AI) 시대에 한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면 첨단기업과 벤처기업으로 돈이 돌아야 하는데 그 핵심에 망국적 부동산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며 "이 대통령이 버블(거품) 붕괴로 '잃어버린 30년'을 맞은 일본 사례를 자주 언급하는 데에도 부동산 시장 개혁의 시급성에 대한 절박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한 핵심 참모도 "한국 경제가 AI 대전환 국면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면 자본시장 등 생산적 분야 중심의 자산구조 대개혁이 필요하다는 게 대통령의 확고한 생각"이라며 "시간이 많지 않다. 상법 개정 드라이브와 한국거래소 개혁 등 자본시장 구조 개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에선 이 대통령 특유의 뚝심과 정책 추진력을 감안하면 '6.3 지방선거' 이후 정부와 시장의 전면전이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오는 5월 9일 만료하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조치를 연장하지 않고 예정대로 종료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다주택자 양소세 중과 유예 종료로 이른바 '똘똘한 한 채' 선호가 커질 것이란 전망에 "주거용이 아니면 안 하는 게 이익"이라고 경고했다. 비거주 1주택자의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 축소와 보유세 인상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이다.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이 부동산 대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증시 활성화는 부동산에 묶여 있던 자금이 자본시장으로 이동하는 '머니 무브'(자금이동)를 유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자본시장에 모인 자금은 다시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 국가 전체의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지는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부동산을 대체할 투자 수단으로 주식을 내세워 집값을 잡고 국가 경쟁력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시장 정상화가 가능한 근거로 "이전에는 부동산이 유일한 투자수단이었지만 이제는 대체투자(주식) 수단이 생겼다"며 "땅·건물만 사려고 하는 것을 유용한 금융자산인 주식시장으로 전환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다. 조금은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증시 활성화로 주식에 투자하려는 자금이 몰리면 자연스럽게 부동산에 있던 자금이 이동해 집값 안정화를 이룰 수 있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그야말로 증시 활성화로 부동산을 잡겠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계의 저축은 기업과 정부의 경제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가계는 부동산 중심으로 자산이 형성돼 있어 생산성이 높은 산업으로 자금 공급이 이뤄지기 어렵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 가계의 자산은 금융자산이 35%, 비금융자산이 65%를 차지한다. 금융자산이 60%를 웃도는 미국·일본과 대조적이다.
학계에선 자본시장에서 자금조달이 활성화되면 혁신기업을 중심으로 민간부문의 성장세를 촉진하고 경제성장을 뒷받침한다는 점은 이미 연구 결과로 증명됐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정부는 생산적 금융 대전환을 전면에 내세워 각종 정책을 펼치고 있다. 증권사가 모험자본을 공급·중개하는 핵심 플레이어로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 IMA(종합투자계좌)·발행어음 등 지정·인가를 진행했다. 개인도 모험자본 투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AI(인공지능)·반도체·바이오 등 국가성장산업에 투자하는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 등도 마련했다. 우리 경제가 자산가격 상승에만 기대던 모델에서 기업의 가치 창출을 통한 성장 모델로 전환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기업도 스스로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한 SK하이닉스는 14조원대 대규모 주주환원을 발표했고 삼성전자도 6조1000억원 규모의 자기주식 매입, 3조8000억원 규모의 현금배당 등을 결정했다. 이런 변화에 코스피는 5000을 훌쩍 넘어섰다. 기업가치 제고 유망 기업 등을 모은 밸류업 지수는 지난달 30일 2330.71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가계의 자금도 증시로 이동하는 추세다. 투자자들이 주식 매매를 위해 증권사 계좌로 자금을 이체했거나 주식 매도 뒤 그대로 두고 있는 대기성 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지난달 30일 기준 100조원을 넘어섰다. 빚투(빚내서 투자) 지표인 신용공여잔고도 사상 처음으로 30조원을 돌파했다.
자본시장으로 머니무브를 촉진하기 위한 과제도 남아있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가계의 노후소득 준비 수준이 충분치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연금 적립에 대한 세제혜택 강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며 "미국의 퇴직연금 제도 401(k)의 연간 납입 한도가 지난해 기준 7만달러에 달할 정도로 이런 인센티브는 가계 자산이 실물경제로 유입되는 선순환을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충분한 수준의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제공해 투자자 신뢰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최근 기업의 주주환원 확대,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