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로 못 막는다…ADB "한국 성장률 1.9% 하회 가능성"

사마르칸트(우즈베키스탄)=최민경 기자
2026.05.05 12:00
앨버트 박 ADB 수석 이코노미스트

아시아개발은행(ADB)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인 1.9%보다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도체 경기 호조에도 불구하고 중동전쟁 장기화 등 올해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 충격이 성장 하방 압력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

앨버트 박 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4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ADB 연차총회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에 대해 "예상보다 강했던 반도체 경기 호조를 감안하더라도 ADB의 4월 전망치(1.9%)보단 성장률이 낮아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ADB는 지난달 10일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1.9%로 제시한 바 있다. 이는 중동전쟁이 단기간 내 안정되며 유가가 배럴당 69달러 수준으로 빠르게 정상화되는 시나리오를 전제로 했다.

그러나 최근 분석에선 에너지 인프라 훼손과 공급 차질로 유가가 더 높은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ADB는 새로운 기준 시나리오에서 국제유가가 올해 배럴당 평균 96달러, 내년 8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반영하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성장률은 올해 약 0.9%포인트, 내년 약 0.5%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반도체 수출 호조는 하방 압력을 일부 상쇄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중동전쟁 장기화로 인한 하방 영향과 반도체 경기 호조의 상승 영향을 합쳐서 평가하진 않았다"며 "7월 발표할 경제전망에서 변화된 여건을 반영해 보다 정교한 전망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반도체 경기와 관련해서는 기존과 다른 구조적 호황으로 사이클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반도체 사이클은 인공지능(AI) 투자가 주도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글로벌 IT 기업 중심의 투자 확대와 생산성 향상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데이터센터 등을 중심으로 과잉 투자 우려도 존재해 단기적으로 변동성이 나타날 수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확장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어 "한국은 이러한 변화에서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덧붙였다.

중동 사태로 제기된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침체) 우려에 대해서는 한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위험이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반도체 수출 호조 덕분에 성장 기반이 견조하다"며 "중동 사태가 조기 해결된다면 물가도 점진적으로 나아질 수 있기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만큼 충격에 취약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재정 여력과 정책 대응 능력이 충분해 이를 관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가 상승 지속 기간과 관련해선 특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석유·가스 시설 파괴 등 물리적 충격이 커질 경우 비관적 시나리오(배럴당 평균 150달러)로 전개될 수 있다"며 "반대로 호르무즈 해협 등 주요 물류 경로가 정상화되면 가격은 비교적 빠르게 안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의 중동 사태 대응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석유최고가격제에 대해선 "현재 상한이 비교적 높은 수준에서 설정돼 있어 재정 부담을 과도하게 키우지 않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유류세 인하나 연료 보조금 등 광범위한 가격 개입은 지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에 대해서는 "고유가로 피해를 입은 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로, 고소득층 지원은 배제하고 소득 하위 70%를 중심으로 설계된 점은 바람직하다"며 "성장 하방 압력을 완충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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