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를 위해 익명 신고를 강화했지만 미등록(불법 체류) 노동자들에게는 실효성이 낮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강제추방 유예 등 구제책까지 약속했지만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뿌리 깊은 체류 불안을 걷어내기엔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고용노동부가 4일 발표한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방지대책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정부 기관 접근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노동포털 내 '익명 제보센터'를 신설하고 다국어 설문조사를 확대하는 등 선제적인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적 의지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선뜻 피해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가장 큰 원인은 고용 및 체류에 대한 불안감이다. 합법적인 비자를 가진 노동자라 할지라도 사업주에게 밉보일 경우 비자 연장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인권 침해가 발생해도 이를 감내하는 경향이 짙다.
미등록 노동자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폭행이나 체불을 신고했다가 도리어 불법 체류 사실이 적발돼 강제 추방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물론 정부도 이 같은 맹점을 인지하고 구제책을 가동 중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임금체불이나 여러 법 위반 사항을 당한 미등록 노동자가 이를 관할 관서에 신고할 경우 해당 근로감독관은 출입국에 대한 불법체류 통보 의무를 면제받는다. 법무부 차원에서도 폭언·폭행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입은 경우 당장 강제 추방하지 않고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별도 비자를 부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문제는 신뢰다. 보호 제도가 존재함에도 미등록 노동자들이 신분 노출 위험을 감수하고 공권력을 믿는 것이 관건이다. 노동부도 "불법 체류자들이 제도를 신뢰하고 적극 나서게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계를 인정했다. 이들이 공적인 구제보다 민간 인권단체 상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대책의 핵심인 익명 신고 시스템 역시 맹점을 안고 있다. 익명으로 가혹행위를 제보해 근로감독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사업주가 이를 전면 부인할 경우 결국 피해 노동자가 이를 입증할 최소한의 증거를 제시해야 실질적인 조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사업장 환경과 언어 장벽, 낯선 법 제도를 고려할 때 이주노동자가 명확한 물증이나 증언을 확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고용허가제(E-9) 하에서 이주노동자가 마음대로 직장을 바꿀 수 없는 구조적 한계도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이주노동자는 부당한 대우나 위험한 근무 환경에 놓인 경우 등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신고는 곧 현재의 직장과 생계수단 상실을 의미한다.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미등록 신분으로 전락할 수 있다.
노동부는 관계부처 및 노사 전문가와 함께 사업장 변경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시기는 미정이다. 정부의 신고 채널 확대 시도는 긍정적이지만 확고한 신분 보호와 제한적인 사업장 변경 권리에 대한 구조적 개선이 병행돼야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현장에서는 노동부가 지엽적인 익명 신고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미등록 노동자의 근본적인 체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기복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는 "지난해 12월 출범한 외국인력 통합지원 로드맵 논의 당시 시민사회와 기업이 공통으로 동의한 것이 미등록 합법화였으나 정작 노동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며 "노동 정책 주무 부서인 노동부가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적발·추방' 원칙을 앞세우는 법무부가 주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법무부는 미등록 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최근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의 컨트롤타워를 자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