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안정되더라도 물가 불안이 쉽게 진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한국은행 분석이 나왔다. 유가 충격이 발생한 뒤 약 6개월 후부터 서비스와 공업제품 가격을 밀어 올리는 '간접효과'가 나타나며 그 영향이 1년가량 지속된다는 것이다. 특히 고유가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근원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은 17일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의 별도 분석(유가 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 간접효과를 중심으로)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경험을 토대로 유가 충격이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러·우 전쟁 전후 주요 원자재 가격은 급등했다. 브렌트유 가격은 2020년 4월 배럴당 27달러에서 전쟁 직전인 2021년 12월 75달러로 오른 데 이어 2022년 6월에는 118달러까지 치솟으며 전쟁 이후에만 57% 추가 상승했다. 2022년 천연가스 가격은 최대 106%, 밀 가격은 39% 상승했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2020년 5월 -0.2%에서 2021년 12월 3.7%로 높아진 뒤 러·우 전쟁 이후 상승폭이 확대되면서 2022년 7월 6.3%로 정점에 도달했다. 당시에는 국제유가와 직접 연계된 석유류 가격이 물가 상승을 주도했지만, 이후 가공식품과 외식서비스, 공업제품 등으로 가격 상승 압력이 번져 나갔다.
한은 분석 결과 유가 충격의 직접효과는 즉각 나타났지만 약 6개월이 지나면서 공업제품과 서비스 등 비에너지 품목 가격이 상승하는 간접효과가 발생했고, 이러한 영향은 1년 정도 이어졌다.
국제유가 상승 영향은 공업제품과 공공요금, 서비스 가격으로 약 14~18개월의 시차를 두고 확산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제식량가격 상승 역시 약 12~15개월 뒤 가공식품과 외식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우 전쟁 직전부터 소비자물가가 정점에 달했던 2022년 1~7월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9%였는데 유가 충격의 직접효과와 간접효과 기여도는 각각 1.1%포인트, 0.9%포인트로 추정됐다.
특히 국제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선 뒤에도 물가 압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2022년 하반기 이후 유가 하락으로 에너지 가격의 직접효과는 약화됐지만, 간접효과는 오히려 이전보다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유가 충격의 크기보다 지속 기간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분석 결과 유가가 일시적으로 급등한 국면에서는 국제유가가 10% 상승해도 5개월 뒤 근원물가 상승폭이 0.06%에 그쳤지만, 고유가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된 경우에는 5개월 뒤 근원물가 반응이 0.1%를 웃돌았다. 이번 중동전쟁처럼 고유가가 장기화될 경우 근원물가에 대한 파급효과도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은은 "6월 중순 이후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이 최종 타결되더라도 국제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내려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하반기 이후에도 유가 충격이 석유류 이외의 근원물가 품목으로 파급되면서 높은 물가 상승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중동전쟁이 끝나고 유가가 점차 하락하더라도 반도체 수출호조에 따른 소득·자산 효과로 인한 소비 개선과 임금 상승 등이 물가를 자극할 수 있으므로 경계감을 가지고 물가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