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에도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고환율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동발(發) 지정학적 리스크(위험)가 일부 완화했지만 강달러 흐름과 외국인 자금 유출, 전쟁 후유증이 겹치면서 당분간 원화 약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21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들어 19일까지 원/달러 환율의 주간거래 종가 평균은 1521.4원으로 집계됐다. 월평균 기준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2월(1626.7원) 이후 28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5일 1500원을 넘어선 뒤 23거래일 연속 15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외환위기였던 1997년 말~1998년 초 이후 최장 기록이다. 당시 1997년 12월 30일부터 1998년 3월 13일까지 원/달러 환율은 49거래일 연속 1500원대를 지속했다.
최근 환율 상승 배경으로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매파적 기조와 중동발 불확실성이 꼽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인플레이션 우려를 이유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주요국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1선을 돌파했다.
미국과 이란이 큰 틀에서 종전에 합의했지만 후속 협상은 순탄치 않다. 최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를 선언하고 미국이 반박하는 등 양측 간 신경전이 이어지면서 지정학적 위험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국인 자금 이탈도 원화 약세를 부추긴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120조원 넘게 순매도했고, 이달에만 20조원 이상 순유출을 기록했다.
외환당국은 투기성 거래도 환율 쏠림의 원인으로 주목하고 있다. NDF(역외선물환) 시장에서 원화 가치 하락을 예상한 베팅이 늘면 거래 상대방인 국내 외국계 은행 등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국내 현물환 시장에서 달러를 매수한다. 이 과정에서 달러 수요가 불어나 환율을 다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미·이란 협상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환율이 당분간 1500원 안팎에서 높은 변동성을 이어가다가, 중동 리스크 완화와 달러 강세 진정 여부에 따라 연말로 갈수록 점진적 하락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연준의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강달러 압력을 지지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6월 5일 야간거래에서 환율이 1560원까지 치솟으면서 시장의 고점 인식 자체가 높아졌다"며 "종전과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엔화 약세와 함께 연준의 매파적 기조 및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의 전략적 모호성이 강달러 압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하반기 원/달러 환율의 적정 범위를 1410~1560원으로 제시하면서 최대 변수로 국제유가를 꼽았다. 호르무즈 해협 갈등 재점화 등으로 유가가 반등할 경우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기대가 다시 강화되면서 환율 경로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국 기준금리는 연 2.50%, 미국 정책금리는 상단 기준 연 3.75%로 1.25%포인트 차이가 난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한미 금리차가 벌어지면 원화 약세와 수입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는 만큼 한국은행은 다음달 중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