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농협 개혁을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가운데 농협이 자체 혁신 작업에 속도를 내며 '선제 개혁'에 나서고 있다. 법 개정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부분부터 손질하면서 정부 개혁 기조에 발맞추는 것은 물론, 그 이상의 변화를 이끌겠다는 의지다.
2일 농협개혁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3월 발표한 '혁신 권고안'의 추진 상황 점검 결과, 자체 개혁과제 16개 세부과제 가운데 12개가 완료되거나 이미 실행 단계에 들어가 전체 과제의 75%가 이행 궤도에 올랐다.
눈에 띄는 점은 상당수 과제가 법률 개정을 기다리지 않고 선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제도 개혁은 입법 이후 시행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농협은 내부 규정과 정관 개정 등을 통해 가능한 분야부터 먼저 실행하며 개혁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임원후보자 추천기구 운영 방식을 개선해 외부위원 추천기관을 확대하고 복수 후보 면접제를 도입했다. 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시행된 '퇴직 후 1년 이상 경과자만 임원 선임 가능' 기준도 이미 현장에 적용됐다. 최근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도 해당 기준이 처음 반영되며 제도가 현실화됐다.
책임경영 강화도 속도를 내고 있다. 계열사 임원의 성과보수 환수제도와 이연성과급 제도를 도입했고, 전체 18개 계열사 가운데 11곳이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오는 8월에는 범농협 차원의 윤리경영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될 '범농협 준법감시위원회'도 출범할 예정이다.
회원조합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개혁도 병행되고 있다. 조합 간 합병 지원을 확대해 현재 2건의 합병을 완료했고, 추가 4건도 추진 중이다. 회원조합 지원자금 심의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농협은 법 개정이 필요한 과제도 준비를 대부분 마쳤다. 선거범죄 공소시효 연장, 조합 이·감사 3선 제한, 독립이사제 도입 등은 이미 국회에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며, 법안이 통과되는 즉시 시행할 수 있도록 내부 준비를 완료한 상태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정부가 추진 중인 농협개혁 방향과도 궤를 같이한다는 평가다. 새 정부 역시 농협의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성 강화, 경제사업 경쟁력 제고 등을 주요 개혁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농협은 정부의 제도 개선을 기다리기보다 자체 혁신을 먼저 추진하면서 개혁의 실효성을 높이고 있다.
이광범 농협개혁위원장은 "지배구조 개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농업인의 삶이 실제로 얼마나 나아졌는지가 혁신의 기준"이라며 "농산물 가격 안정과 농촌 인력난 해소 등 농업인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개혁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