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엔화 약세와 원화의 과도한 변동성을 공개적으로 경계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1420원대 중반으로 하락했다. 미국이 아시아 통화의 약세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자 원화 약세에 베팅했던 시장의 움직임도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거래 종가보다 8.0원 내린 1424.5원에 주간거래를 마쳤다.
베센트 장관의 발언이 이날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미쳤다. 베센트 장관은 전날 CNBC 인터뷰에서 "엔화가 상당히 약세를 보이면 다른 통화들도 그 뒤를 따라갈 것"이라며 "한국 원화에서도 과도한 변동성을 목격해왔다"고 말했다.
또 최근 미국과 일본의 엔화 매수 개입 배경을 설명하면서 "일본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 할 것"이라며 추가 대응 가능성도 열어뒀다. 엔화 약세가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 가치 하락으로 번지는 것을 막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미국 정부가 최근 원화 약세와 변동성 확대를 정책적으로 주시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특히 한국이 약속한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원화 약세로 차질을 빚을 경우 미국의 투자 유치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원화의 과도한 변동성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면서 한국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 명분도 강화됐다. 일각에선 한국 외환당국이 지난달 30일 미·일 공동 개입과 비슷한 시점에 달러 매도에 나섰을 것으로 추정했다.
베센트 장관의 이 같은 행보가 미국 국채시장 안정과도 연결돼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자국 통화 방어를 위해 보유 중인 미국 국채를 대규모로 매도하면 미국 장기금리가 급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베센트 장관이 금융시장 전면에 다시 등장한 것은 미국 국채시장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면서도 "엔화 방어와 이란 협상 등을 통해 국채시장의 소방수 역할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스콧 베센트 장관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협상 타결 가능성을 강조한 점도 원화 강세에 힘을 보탰다. 협상 기대에 국제유가와 미국 국채금리가 하락하고 위험자산이 선호되면서 원화에 우호적인 환경이 형성됐다.
국내 증시에서도 외국인 투자자가 1조4000억원 넘게 순매수하며 원/달러 환율 하락에 힘을 보탰다.
다만 베센트 장관의 발언만으로 원/달러 환율이 하락세를 유지할 것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여전히 큰 데다 엔화가 다시 약세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원화가 동반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수입업체 결제와 거주자의 해외주식 투자 환전 수요도 원/달러 환율 하락을 막는 요인이다. 전날에도 환율이 1420원대 초반으로 내려가자 역내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추가 하락이 제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