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의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이행 요구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 등 무역 장벽이 현실화하면서 재생에너지 기반의 산업단지 조성이 국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 현안으로 떠올랐다.
정부와 국회가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원 인근에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현지 생산 현지 소비)'형 RE100 산업단지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해외 주요국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단순한 발전소 건설을 넘어 전력 인프라, 파격적인 세제 혜택, 인력 정주 여건이라는 삼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주요국의 재생에너지 산업도시 조성 사례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기업의 재생에너지 전력 소비 비중은 12% 수준에 그친다.
RE100 가입 기업의 주요 생산 시설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반면 태양광·풍력 등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원은 호남·영남 등 지방에 편중돼 있다. 이로 인해 장거리 송전망 신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계통 접속 지연 문제가 불거지며 기업들의 RE100 조달에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보고서는 해외 주요국의 재생에너지 산업도시 성공 사례로 중국 오르도스, 말레이시아 사라왁, 스웨덴 노르보텐을 제시하며 추진 방식과 유인책의 차이에 주목했다.
중국 내몽골의 오르도스시는 민간기업과 합작해 분산전력망을 구축, 반경 150㎞ 내 풍력·태양광 발전원에서 필요 전력의 80%를 직접 공급받는 구조를 만들었다. 직공급 방식으로 송·배전 비용을 크게 절감해 기업의 전기요금 부담을 낮췄다. 여기에 청년·고학력 인재에게 임대아파트를 최대 3년간 무상 제공하고 주택임대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생활서비스구'를 함께 조성해 인력을 유인했다.
말레이시아 사라왁 지역은 대규모 수력발전 인프라를 바탕으로 사말라주 산업단지를 조성해 알루미늄, 반도체 소재 기업을 유치했다. 사라왁 정부는 투자 기업에 최대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하거나 설비투자액의 100%를 과세소득에서 공제하는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함께 일반 지역 대비 약 27% 저렴한 우대 전력 요금을 제공했다
반면 풍부한 수력·풍력 인프라(재생에너지 비중 96.6%)를 기반으로 그린철강과 메타(Meta) 데이터센터 등을 유치한 스웨덴 노르보텐의 경우, 기업 투자는 성공했으나 인력 유인을 위한 정주 정책이 부재해 심각한 노동력 부족과 인구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산업단지만 조성하고 정주 인프라나 인력 인센티브가 뒤따르지 않을 경우 도시 안착에 실패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는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에 신규 부지를 조성하는 'RE100 산업단지'를 추진 중이며 국회에서도 이와 관련된 특별법안 11건이 발의돼 논의가 진행 중이다. 발의된 법안들은 공통적으로 발전시설이 들어서는 '에너지집적화지구', 전력을 전달하는 '전력망지구', 입주기업을 위한 '산업시설지구', 근로자의 '배후정주지구'를 패키지로 묶어 자립형 도시를 조성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의 고유 한계인 간헐성과 출력 변동성을 극복할 보완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RE100 산단이 안정적으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 및 양수발전망 구축, AI 기반 가상발전소(VPP) 통합 관리 체계, 그리고 비상시 전력을 백업할 유연성 전원 및 계통 보강 요금 체계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박선아 국회예산정책처 분석관은 "성공적인 재생에너지 산업도시를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전력 인프라 구축과 함께 세제 지원 등 기업 유인책, 그리고 전문 인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정주 여건과 인력 확보 유인체계가 균형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제언했다.